“지폐 대신 디지털위안화로 달러 이긴다”… 中 금융굴기 야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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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王府井)의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점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손님이 많이 줄었는데, 최근 디지털위안화 실험 덕분에 매장을 찾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지난달 시 당국은 추첨을 통해 시민 5만 명에게 디지털위안화 총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을 시범 배포했다. 개인당 받은 금액은 200위안(약 3만5000원). 이를 대형마트 약국 음식점 등 당국이 정한 장소에서 쓸 수 있도록 하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첨된 사람들이 소비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2014년 중앙은행인 런민은행 내에 디지털화폐연구팀을 설치하며 ‘디지털위안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각종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베이징 선전 등 주요 도시에서 시범적으로 배포하며 기능 점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당국이 아직 디지털위안화의 공식 발행 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펑파이 등 현지 매체들은 중국이 2022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전후로 디지털위안화를 발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실화하면 주요국 최초로 법정 디지털화폐를 도입한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 종이지폐는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디지털화폐 시장에서는 반드시 기축통화를 만들어 일종의 ‘금융 굴기(굴起·우뚝 섬)’를 이루겠다는 중국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지털위안화 사업 속속 확대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 형태의 법정 화폐다.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와 달리 정부가 발행하므로 일반 화폐와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지급 불능 위험이 없다.

특정인이 보유한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중간 매개체 없이 개개인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디지털지갑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사용 때 인터넷 연결이 필요 없어 편리하다는 뜻이다. 지난달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사용해본 베이징 시민들 역시 이 점을 반겼다. 이들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위챗과 즈푸바오는 지하주차장 등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는 잠시 사용이 어려울 때가 있는데, 디지털위안화는 이런 문제가 없어 편했다”는 소감을 내놨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경제가 발달한 남부 선전 등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배포했다. 올해는 수도 베이징, 쓰촨성 청두 등 주요 도시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이달 19일까지 청두에서 실시하는 시범 배포는 20만 명에게 총 4000만 위안(약 70억 원)을 뿌리기로 해 지금까지 진행된 시범 사업 중 규모 면에서 최대다. 당국이 정한 몇몇 상점에서만 쓸 수 있었던 다른 도시의 시범사업과 달리 청두 시내 1만1000여 개의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사용처 제한도 사실상 사라졌다.

인프라 보유 거부감도 낮아

중국 베이징의 한 상점에서 고객이 디지털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베이징 선전 쓰촨 등 주요 도시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배포한 중국이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맞춰 디지털위안화를 공식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사진 출처 웨이보
중국 베이징의 한 상점에서 고객이 디지털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베이징 선전 쓰촨 등 주요 도시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 배포한 중국이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맞춰 디지털위안화를 공식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사진 출처 웨이보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국 중앙은행 중 한국 미국 등 80% 이상이 디지털화폐 연구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이처럼 디지털화폐 도입이 성큼 다가온 상황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제반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해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아직 현금 사용 비율이 높은 일본 등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인프라 측면에서 디지털위안화 보급에 장애물이 거의 없는 셈이다.

디지털화폐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도 크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기존 화폐의 막대한 발행·보관·유통비용이 감소하면서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디지털화폐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 우려로 이를 꺼리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사용처와 주체가 일일이 공개되는 전자화폐의 특성상 감시사회가 도래한다는 의미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과 반발 심리가 낮고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또한 가능하다.

미국과 화폐 전쟁 불가피

지난달 말 런민은행은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국제 무역결제 및 금융거래에서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는 시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각국이 자신들의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면서 타국 디지털화폐까지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목표다.

중국이 국내에 이어 국제 시범사업까지 참여하는 것은 디지털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미 달러화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부터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위안화 국제화를 집요하게 시도해왔다. 하지만 1월 말 기준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의 세계 지불통화 비중에서 위안화는 불과 2.4%만 차지하고 있다. 달러(38.3%)와 유로(36.6%), 영국 파운드(6.8%) 등에 크게 못 미친다. 국내총생산(GDP)으로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지만 위안화 종이화폐의 위상은 초라하다는 평이 나올 법하다. 기존의 종이화폐 시장에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만큼 차라리 사용처가 점점 늘어날 디지털화폐 시장을 선점하자는 전략인 셈이다.

중국 금융 전문가들은 중국이 디지털위안화를 공식 발행한 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핵심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서 이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디지털위안화 사용을 장려한 후 이를 세계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도 ‘디지털달러’로 맞불

중국의 의도와 달리 디지털위안화의 국제화가 중국의 금융 규제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도 거론된다. 기축통화는 말 그대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하려면 해당국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의 까다로운 금융 규제로 중국 자본의 국제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 타국 통화와의 교환 비율 산정 등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장밍(張明)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신화통신에 “디지털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금융개혁이 우선”이라며 금융시장의 대대적인 개방을 촉구했다.

미국 또한 디지털달러로 맞불을 놓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달 23일 상원 청문회에서 “디지털달러 발행이 연준의 우선순위 사업 중 하나”라며 올해 중 디지털달러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루 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역시 “현재 많은 미국인이 쉬운 지불 체계에 접근할 수 없는데 디지털달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지폐#디지털위안화#달러#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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