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에 있는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교의 교가가 23일 공영 NHK 생중계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된다. 일본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인기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이 학교가 출전하기 때문이다. 93년 고시엔 역사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지는 것은 처음이다. 이 대회에 외국계 고교가 진출한 것도 사상 처음이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한국어 교가는 ‘아리랑’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일본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적 힘”이라며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일본에 4개뿐인 한국계 학교 중 하나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교로 시작해 1963년 고등부를 개교했고, 한국 정부의 중고교 설립 인가에 이어 2004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학교 인가도 받았다. 고교 야구부는 22년 전인 1999년에 창단됐다. 그해 처음 출전한 지역대회에서 0-34의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일본인 학생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해 야구부 규모와 실력을 키웠다. 현재 전교생 131명 중 일본인 학생은 93명으로 한국 국적 학생 37명보다 더 많다.
이 학교 야구부는 2016년 지역대회 4강, 2019년 춘계 지역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지역의 야구 명문으로 부상했다. 3월 현재 일본 고교 중 야구부가 있는 곳은 3940곳에 이른다. 이 중 지난해 가을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32개 고교에만 봄 고시엔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교토국제고가 그중 하나로 꼽힌 것이다.
이 학교는 ‘동해’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로 인해 일본 내 우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박 교장은 “1월 말 고시엔 출전 학교 명단이 발표된 직후 일본 우익들이 온라인과 유선전화로 항의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잠잠해졌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에 입학하면 1박 2일간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이 기간 한국어 교가를 완벽하게 암기해야 한다.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 신입생도 한국어 교가는 부를 줄 알게 된다. 일각에선 한국어 교가 제창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박 교장은 “70년 넘게 이어온 한국어 교가를 부르지 못하면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의미가 퇴색된다. 일본인 학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첫 경기를 치르는 23일 한국인 일본인 학생 모두 한국어로 교가를 부르게 된다. 일본인 학생들은 귀화한 한국 교포, 결혼한 한일 커플의 자녀 등 대부분 한국과 인연이 있다.
NHK가 중계할 때는 교토국제고 교가의 일본어 번역 자막이 화면에 표시된다. 교도통신은 “동해(東海)가 아니라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표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장은 “한국어로 녹음한 CD를 대회 주최 측에 제출했고, 번역에 대해 어떤 질문도 요구도 없었다”며 “한일 우호 협력을 중요한 교육 목표로 하는데, 교가 가사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처음 출전하는 이번 대회의 목표는 어떻게 될까. 박 교장은 “고시엔 진출 자체가 큰 목표였는데 이번에 이뤘으니 일보 전진한다는 의미에서 1승만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무 소박한 목표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버스를 여러 대 동원해야 하고, 선수들과 응원단 점심 등 비용을 감안하면 계속 이겨도 고민스럽다”면서 웃었다. 고시엔은 19일부터 효고현에 있는 한신고시엔 야구장에서 열린다. 재일동포 사회 중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재정이 부족한 교토국제고 야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성금을 모으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첫 상대는 역시 처음 출전하는 미야기현의 시바타(柴田)고교. 두 학교 선수들은 경기 중간에 한 번씩 각자의 교가를 부른다.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만 교가를 한 번 더 부른다. 승리 팀 학교가 교가를 부르는 동안 패한 팀 선수들이 눈물을 쏟아대면서 분한 듯 주먹으로 그라운드를 내리치고 하는 모습은 고시엔 대회만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23일 교토국제고의 ‘동해 바다’ 한국어 교가가 한 번으로 끝날지, 두 번 울릴 수 있을지 재일동포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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