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처음 가진 고위급 회담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18, 19일(현지 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이번 회담에서 ‘흑인 학살’ 등 거친 표현으로 미국을 공격한 양제츠(楊洁篪·71)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양 정치국원은 평소 온건한 성향의 ‘미국통’으로 알려져 있어서 ‘학살’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에 대해 중국 내에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양 정치국원은 18일 퇴장하는 취재진들을 돌려세워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싸우고 있는 동안 중국은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억제했다.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살해한 미국이 중국에 인권을 강의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등 관영매체는 그의 발언이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새로운 자신감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1950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양 정치국원은 중국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미국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1~2005년 주미 중국 대사, 2007~2013년 외교부장을 지내며 대미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주미 대사 4년을 포함해 주미 중국대사관에서만 3번에 걸쳐 10년을 근무했다.
양 정치국원은 1977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 부시’) 가족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27세 신입 외교관 자격으로 수행 통역을 맡았다. 이 때 인연으로 부시 일가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이후 그가 주미 중국 대사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양제츠를 ‘타이거 양’이란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친했다. ‘타이거 양’은 그의 출생연도가 호랑이해(1950년)인 점과 그의 이름 안에 호랑이 부수(虎)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별명이다.
그가 ‘미국통’이란 사실은 주미 대사로 근무하던 2001년 4월 미중 전투기 충돌 사건을 중국에 유리하게 풀어낸 것에서 증명된다. 당시 미 해군 정찰기가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상공에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했다. 미국은 모든 책임이 중국에 있다면서 충돌 후 비상 착륙해 억류된 미군 24명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 전투기는 추락했고 조종사는 실종된 상태였다.
당시 양 정치국원은 미국 TV방송에 출연해 “자동차 사고가 나서 한 쪽은 사람이 크게 다치고 다른 한쪽은 차만 부서졌다면 어느 쪽이 먼저 사과하겠느냐”라고 주장했다. 미국 일상생활의 논리를 활용한 그의 비유는 미국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미국 국내 여론을 20%에서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를 맞아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시 주석을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7명의 상무위원과 이외 18명의 정치국 위원으로 구성되는 중국 내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또 이어 2018년 확대 개편된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에도 임명됐다.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주임은 시 주석이고, 부주임은 리 총리다. 이어 실제 사무 업무를 관장하는 판공실의 주임이 양제츠다.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이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일은 적기 때문에 외교 분야의 모든 무게 중심이 양 정치국원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행정부 역할을 하는 국무원 산하에 외교부가 있지만, 공산당이 행정 군사 입법 등 모든 분야를 영도한다는 원칙에 따라 외교부보다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가 더 상급 기관으로 평가받는다. 왕이(王毅) 외교부장 또한 양 정치국원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구조다. 특히 중앙외사공작위원회는 기존 공산당 내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라는 조직을 2018년 확대 개편한 조직이다. 현재 중앙외사공작위원회의 위원장 주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맡고 있으며 부주석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맡고 있다. 양제츠 정치국원은 위원회의 실질적 운영을 맡는 판공실 주임이다. 외교 분야 전문가들은 시 주석과 리 총리가 공산당 내 중앙외사공작위원회까지 실질적으로 챙길 수 없기 때문에 외교 분야의 모든 권력이 양제츠 판공실 주임 겸 정치국원에게 쏠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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