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발효… 45개국 중 처음 탈퇴
에르도안, 보수 이슬람 지지층 의식
여성들 전국 곳곳 대규모 항의 시위
“작년 가정폭력에 여성 400명 희생”
20일 터키 이스탄불 여성들이 이슬람 강경보수 노선을 펴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여성폭력을 금지한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을 규탄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스탄불=AP 뉴시스
터키가 여성폭력 금지를 골자로 한 국제협약 ‘이스탄불 협약’에서 돌연 탈퇴하겠다고 20일 밝혔다. 2014년 발효됐고 터키, 유럽연합(EU) 주요국 등 총 45개 국가가 가입한 이 협약에서 탈퇴 의사를 밝힌 나라는 터키가 처음이다. 2003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슬람 근본주의 및 우경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전격 탈퇴를 감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이날 “이스탄불 협약은 이혼을 부추기고 전통적인 가족관을 파괴한다”며 탈퇴 이유를 밝혔다. 이스탄불 협약은 전통 문화 종교를 여성에 대한 폭력 행위의 명분으로 삼을 수 없으며 각국이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결정이 알려지자마자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이즈미르 등 전국 곳곳에서 여성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여성권익 신장 운동을 상징하는 보라색 깃발을 들고 “결정을 철회하고 협약을 비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현지 인권단체들 또한 성명을 통해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희생된 터키 여성이 약 400명이며 올해도 78명이 숨졌다”고 우려했다. 독일, 프랑스 외교부 등도 터키의 결정을 비판하며 여성인권이 심각하게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핵심 지지층인 보수 이슬람 세력을 의식해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공언한 정교분리 원칙을 깨고 강도 높은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표 관광명소 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성소피아박물관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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