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적대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에 단결을 강화하자”며 바싹 밀착했다. 미국과 중국이 알래스카 앵커리지 고위급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난타전을 벌인 지 이틀 만이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서 북한을 겨냥해 “압제 정권”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지 3일 만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2, 23일 연이어 미국을 향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맞섰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최근 한국과 일본을 찾아 반중(反中)전선을 위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자 북-중-러가 밀착해 반미(反美)연대 구축에 나서면서 ‘인권 전쟁’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중국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한목소리로 미국을 비판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3일 곧바로 한국으로 날아왔다. 라브로프 장관의 방한은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인권, 중국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견을 보인 한국을 ‘동맹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 北, 中에 “적대세력 비방 중상에도 괄목 성과”
2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 22일 교환한 구두 친서에서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두 당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따라 (1월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연구 분석한 데 기초해 국방력 강화와 북남관계, 조미(북-미)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결정할 것을 통보했다”고도 했다. “적대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괄목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을 매개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정조준하자 미국을 ‘공동의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중국 편에 서겠다고 약속한 것.
시 주석은 “(한반도 등)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롭고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며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할 의사를 밝혔다. 미중 갈등과 북-미 대치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며 대북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 러 외교장관, 中이어 韓서도 美 비판 예상
중국은 러시아와도 반미 전선을 강화했다. 왕 부장과 라브로프 장관은 23일 발표한 중-러 공동성명에서 미국을 겨냥해 “다른 나라가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며 “민주주의의 표준 모델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이 인권 문제를 이유로 1989년 이후 32년 만에 중국 제재에 나서는 등 공세를 강화하자 맞대응에 나선 것.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에서 “외국의 비우호적 행동에 맞서 중국과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중-러 공동 전선을 강조했다.
중국에서 미국 비판에 목소리를 높인 라브로프 장관은 23일 한국에 도착해 2박 3일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24일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상호 교류의 해 개막식 행사에 참석한 뒤 2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우리 정부는 라브로프 장관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과 북-미 대치 속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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