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교 1학년 사회과 교과서 30종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이 담겼을 뿐 아니라 가해(加害)의 역사를 애매모호하게 하고, 위안부 기술을 과거보다 후퇴시켰다는 특징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을 심판한 도쿄재판에 의문을 제기한 일본 극우 시각의 교과서도 검정에 합격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한 출판사의 공공 교과서는 “상대국(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다케시마에는”이라는 표현으로 검정을 신청했지만, 문부성이 ‘오해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다케시마에는”으로 수정했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기술마저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번 교과서 검정과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요토리야마 요스케(世取山洋介) 니가타대 교육학부 교수는 이날 일본 민영방송 TBS와의 인터뷰에서 “영토 문제도 어떻게 접근을 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바뀔 수 있다”며 “(일본의) 국익 중심으로 국경 문제를 가르치는 것은 천박하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종합 교과서에서 기술됐는데 대체로 이전 교과서보다 기술 내용이 줄었다. 특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기술한 곳은 역사종합 12종 중 야마카와(山川)출판 한 곳뿐이었다. 역사 교과서 중 채택률이 가장 높은 야마카와출판(지난해 기준 일본사A 30.1%, 일본사B 71.5%)은 “일본, 조선, 대만 점령지 여성이 위안부로 모아졌다. 강제되거나 속아서 연행된 사례도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다이이치가쿠슈샤(第一學習社)는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고만 기술했다. 일본군의 요청에 의해 위안부가 모집됐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도쿄서적은 “일본인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많은 사람이 위안부로서 종군(從軍)하게끔 됐다”고 설명했다. 강제적으로 끌려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불명확하게 처리한 것이다. 메이세이샤(明成社)는 위안부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았다.
강제징용과 관련해 도쿄서적의 역사종합 교과서는 “한국 등 경제협력의 형태로 보상을 실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조약으로 보상 문제는 개인에 대한 보상을 포함해 이미 해결된 것이라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 외의 대부분 역사종합 교과서는 ‘강제성’을 언급했다.
시미즈(淸水)서원은 역사종합 교과서에서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 등을 다룬 코너에 ‘일본의 대륙 진출’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데이코쿠(帝國)서원의 역사종합 역시 만주사변 등에 관해 ‘중국 대륙 진출’이라고 표기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사죄했는데 이런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메이세이샤의 역사종합은 ‘평화에 대한 죄와 군사재판이 남긴 과제’라는 소제목으로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한 라다비노드 팔 판사(1868∼1967)의 의견을 자세히 실었다. 도쿄재판을 의문시하고 팔 판사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은 일본 내 극우 세력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번 검정에서 별문제 없이 통과했다.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결함이 405곳이나 있어 탈락한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계열인 지유샤(自由社)의 역사 교과서가 재신청을 통해 이번에 합격했다. 이 교과서에는 4∼6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입각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또 임진왜란을 ‘조선출병’으로 표현했다.
교육부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정부는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범죄를 축소·은폐한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검정 합격시켰다는 사실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에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일본이 역사 왜곡을 반복하는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시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들여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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