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사이 여러 정치 문제가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문화면에서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조선 도공의 후예인 15대 심수관(沈壽官·65·사진)은 6일 가고시마현 히오키시 미야마의 심수관요(窯·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명예총영사관 개관식 행사에서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1월 그를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임명하고 심수관요에 명예총영사관을 개설키로 결정했고, 2월 일본 외무성의 승인을 얻으면서 최종적으로 이날 개관식을 열었다. 15대 심수관은 일본 국적자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승인이 필수적이다.
행사에 참석한 이희섭 주후쿠오카 총영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명예총영사 임명 작업을 진행했는데,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아 일정이 길어질 줄 알았다”며 “한일이 임명 절차를 빠르게 끝낸 것은 양국이 그만큼 관계 개선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15대 심수관의 아버지인 14대 심수관은 앞서 1989년 명예총영사에 임명됐다. 2019년 6월 작고하면서 명예총영사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다가 이번에 다시 15대 심수관이 명예총영사가 됐다.
시오타 고이치(¤田康一) 가고시마현 지사는 축사를 통해 “15대 심수관은 일한(한일) 청소년 교류, 문화 교류, 장애인 교류 등에 폭넓은 역할을 해 왔다”며 “명예총영사관 개관을 계기로 가고시마현과 한국이 한층 더 교류를 늘리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행사 후 15대 심수관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징용, 수출규제 등으로 한일 국민 감정이 좋지 않아 솔직히 (명예총영사를 받아들일지) 주저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 또 한일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은 조국(祖國·조상 대대로 살던 나라)이고, 일본은 모국(母國)이다. 한일 관계가 나쁘면 나는 부부싸움을 보는 듯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한일 정부 사이는 체면이 중요하고, 기업 사이는 이익이 중요하지만, 개인 사이는 이득이 없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며 “나의 역할은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일본을 사랑하는 한국인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간 차이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한일 관계가 안 좋더라도 개인적 인연을 가진 한일 정치인들이 갈등을 줄였는데, 요즘은 그런 정치인들이 적어진 게 안타깝다”고 했다.
15대 심수관은 1598년 정유재란 때 때 조선에서 끌려 온 도공 심당길의 15대손이다. 심수관 가문은 423년 동안 도자기 명가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메이지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을 기려 이후 자손들이 ‘심수관’이란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15대 심수관도 와세다대 교육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교토와 이탈리아, 경기 이천 등지에서 도예를 공부했고 1999년 1월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그는 “기자가 되고 싶어 방송국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도자기 가업을 이어가길 원해 결국 도공이 됐다”고 했다. 그는 아들 두 명 중 한 명에게 역시 가업을 잇게 할 생각이다.
현재 심수관요에는 제작을 담당하는 기술인 20명과 판매 담당 8명이 일한다. 그는 첫 디자인을 포함해 전반적인 제작을 총괄한다. ‘1년에 몇 개 도자기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수백 개는 만들 텐데, 정확한 개수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엔 NHK,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시니혼신문 등 일본 언론사 약 20개사가 취재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각종 단체로부터 온 화한도 15개나 됐다. 그 중에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으로부터 온 화한도 있었다. 한일 문화교류가 문부성 영역이어서 화한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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