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이드 살해 백인 경찰에 유죄 평결…바이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1일 0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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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 과정에서 목을 눌러 숨지게 한 전직 백인 경찰관에게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당시 “나는 숨을 쉴 수 없어”(I can‘t breathe)라고 절규했던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일으킨 도화선이 됐다.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에서 경찰이 기소된 사례는 많지 않았고 살해 혐의로 실제 유죄 평결이 내려진 적은 더욱 드물었다. 전현직 대통령 등 유명인사들과 미 언론은 “정의가 승리했다”,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의 피터 카힐 판사는 20일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배심원단이 피의자 데릭 쇼빈(45)에게 유죄를 평결했다고 발표했다. 배심원단은 쇼빈에게 내려진 2급 살인, 3급 살인, 2급 우발적 살인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각각 최대 40년, 25년,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혐의다. 따라서 쇼빈은 이를 모두 합치면 최대 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물론 그보다는 적은 형량이 예상되지만 최소 수십 년의 징역형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나온다. 선고 공판은 8주 뒤에 열린다.

이날 유죄 평결로 쇼빈의 보석은 취소됐고 그는 법정에서 수갑을 찬 채 다시 구치소로 돌아갔다. 그는 작년 10월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였다.

쇼빈에게 유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은 백인 6명과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 6명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배심원단은 이틀 동안 10시간에 걸친 심리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플로이드(46)는 지난해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상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쇼빈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졌다. 쇼빈이 자신의 목을 9분 29초 누르는 동안 ’숨을 쉴 수 없다‘고 여러 차례 호소한 플로이드는 결국 의식을 잃고 숨졌다. 쇼빈 측은 플로이드가 약물 복용과 심장 질환 때문에 숨졌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목눌림으로 인한 산소부족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맞서왔다. 이 사건은 지난해 미 전역을 휩쓴 인종차별 반대시위의 불씨가 됐고, 일부 시위는 약탈과 방화 등 폭동 양상으로 번지면서 사회 불안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경찰이 공권력 남용을 이유로, 그것도 흑인을 상대로 한 과잉 진압으로 유죄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이 미국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이번 평결은 미국의 정의를 위한 행진에서 큰 한 걸음이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이라면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 플로이드의 딸과 통화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바꿨다‘고 말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오늘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지만 고통이 사라지진 않았다”며 “이 평결이 우리를 공평한 정의에 한 걸음 더 가깝게 해줬지만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명에서 “오늘 배심원들이 옳은 일을 했다”면서도 “진정한 정의는 더 많은 걸 요구한다. 플로이드의 가족들에게 우리의 기도를 보낸다”고 했다.

이날 배심원 평결은 미 전역이 크게 긴장한 상황에서 나왔다. 혹시라도 평결이 쇼빈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나올 경우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미 주요 도시의 상점들은 폭동에 대비해 합판을 덧댔고 관공서 주변에는 주방위군과 경찰이 증강 배치됐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유죄 평결이 발표되자 플로이드의 가족들과 법원 주변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플로이드의 남동생 필로니스는 기자회견에서 “이제 우리는 다시 숨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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