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악화하는 인도에 백신을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도의 처참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백신 이기주의 지적이 잇따르자 “현재로선 다른 나라에 백신을 줄 여력이 없다”고 한 지 닷새 만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마스크 착용규정 완화 등 바뀐 지침을 설명하는 연설을 한 뒤 인도에 백신을 지원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전날 통화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가 언제 백신을 실제로 인도에 보낼 수 있을지 그와 논의했다”며 “그렇게 하려는 게 나의 의도”라고 했다. 노바백스 같은 다른 백신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도 “심한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에 우리의 백신 및 (제조)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이것이 우리의 바람이자 기대”라고 했다. “인도는 초기에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왔다”는 점도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000만 회분을 다른 국가에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국과 빈국 간의 ‘백신 격차(divide)’가 나타나면서 백신 공유에 대한 글로벌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 인도의 경우 현재 확진자 수가 하루 30여만 명씩 쏟아지고 있는데다 사망자 수도 급증하고 있어 지원이 절실하다.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4자 협의체) 멤버이자 인도태평양 내 미국의 주요한 파트너 국가로 지원 우선순위에 올라있기도 하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는 백신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국을 역내에서 견제해야 한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지 않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 같은 지정학적 경쟁국이 곳곳에 진출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도 검토 중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다양한 방법이 있고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답변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합당한지 평가해야 한다”며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에서 백신 생산을 증대시키는 게 더 효과적일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로부터는 권고가 없고 대통령도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앞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와 관련된 지적재산권 규정의 적용을 일시 면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글로벌 시민단체와 60명의 전직 정상,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를 요청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전날 백신 제조업체인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관계자들과 만나 이를 논의했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실제 면제 여부는 불투명하다. 제약업체 등은 지식재산권협정(TRIPS) 면제가 백신의 안전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신기술 탈취 우려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백신 생산의 증대나 보급 확대 같은 다른 방법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지적재산권 면제의 전례가 만들어질 경우 향후 다른 백신에도 잇따라 적용될 가능성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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