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달착륙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 암투병 끝에 숨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9일 08시 31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3인방 중 한 명인 마이클 콜린스(91)가 암투병 끝에 28일 숨졌다. 콜린스는 1969년 7월 아폴로 11호 사령선의 조종을 맡으면서 인류의 우주 비행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유족은 트위터 등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그는 항상 삶의 도전을 품위와 겸손으로 맞섰고 그의 마지막 도전(암 투병)도 그랬다”며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행운이라고 느꼈으며 그 인생을 슬퍼하지 말고 기념해달라는 그의 소망을 우리는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폴로 11호에는 선장 닐 암스트롱과 착륙선 ‘이글’의 조종사 버즈 올드린, 사령선 ‘컬럼비아’의 조종사 콜린스가 탑승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컬럼비아호에서 분리된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지만 콜린스는 사령선에 머물면서 이들을 보조하는 업무를 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까지 콜린스는 21시간 이상 달 상공 100km의 사령선에 혼자 머물면서 달 궤도를 돌았다. 그가 달의 뒤편으로 갔을 때는 지구와도 교신이 끊기면서 드넓은 우주 한복판에서 절대 고독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는 5년 뒤 발행된 회고록에서 이 순간에 대해 “나는 혼자다. 진정한 혼자다. 어떤 생명으로부터도 절대적으로 고립됐다”며 “오직 신과 나만이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 아폴로 11호의 업무 일지에도 이 순간에 대해 “아담 이래로 마이클 콜린스처럼 고독을 느껴본 인간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폴로 11호 멤버 중 유일하게 달 표면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잊혀진 비행사”, “세 번째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탐사를 마치고 다시 합류할 때 착륙선에 고장이 생기면 그들이 영영 달에서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걱정하는 등 동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1930년에 미 육군 장군의 아들로 태어난 콜린스는 1952년 뉴욕 웨스트포인트의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공군 비행사로 일하던 그는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개발 전쟁이 한창이던 1963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콜린스의 첫 우주비행은 1966년 아폴로11호의 준비 단계였던 제미니호에 탑승해 도킹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아폴로 11호는 그의 두 번째 비행이었다.

비행 후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을 피해 비교적 조용히 살던 그는 공직을 잠시 경험한 뒤에 1978년까지 국립항공우주박물관장직을 맡았고 이후에도 우주 관련 책들을 여럿 저술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지구가 너무 연약해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10만 마일 거리에서 자신의 행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모든 중요한 국경은 보이지 않게 되고 시끄러운 논쟁도 조용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달 착륙 3인방은 모두 1930년생 동갑내기 사이로 이제는 올드린 한 명 만이 세상에 남았다. 암스트롱은 2012년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숨졌다. 올드린은 트위터를 통해 “마이크, 당신이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고 앞으로 어디에 있든 간에, 당신은 우리를 새로운 고지와 미래로 발사해줄 것”이라고 추모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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