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2일 TV 연설을 통해 “외교부는 정책 결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실행하는 기관”이라며 꺼낸 말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과도한 영향력을 비판한 외교장관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란 관영 IRNA통신에 따르면 이날 하메네이는 “한 국가 정책은 외교 뿐만 아니라 군사, 경제, 과학 등 다양한 요소로 이뤄져 있어 한 영역이 다른 분야를 부정하는 것은 관리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란 외교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최고지도자 직속기구인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있다”며 “이란의 국익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혁명수비대는 이란 외교의 주축”이라고 못박았다.
이와 같은 발언은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협상을 이끌어온 온건파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읽힌다. 지난달 25일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네셔널은 자리프 장관이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향력이 과도하다며 이를 비판한 비공개 인터뷰를 입수해 보도했다.
3월에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자리프 장관은 “이란에선 안보가 외교에 우선하며, 모든 사안을 안보의 시각으로 보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월 3일 미국 무인기 폭격을 받아 암살된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군 사령관이 외교부의 반대에도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견한 사실을 언급하며 “외교장관 영향력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란 관리가 혁명수비대를 작심 비판한 인터뷰 내용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자리프 장관은 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터뷰가 공개될 줄 알았다면 해당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솔레이마니 전 사령관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3일에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외교 정책은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비공개 인터뷰가 유출돼 최고지도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라고 재차 사과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란 최고지도자 직속 특별조직으로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린다. 정부 통제를 받지 않고 권력도 정부 이상이다. 2009년 1월엔 모하메드 알리 자파리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과 언론 자유 확대를 두고 언쟁을 벌이다가 총사령관이 대통령의 뺨을 때렸는데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넘어갔을 정도다. 하메네이의 이번 연설 발언도 온건파 정부와 혁명수비대가 불화하는 가운데 혁명수비대 쪽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란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지난달 6일부터 재개된 서방과의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두고서도 내부 잡음과 이견이 커지고 있다. 이란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 국영방송은 2일 익명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자국에 구금된 미국인 4명을 석방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즉각 부인한 데 이어 3일 이란 외교부 사이드 하티브자데 대변인 역시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AP통신 등은 서방과 협상중인 이란 온건파 정부를 방해하려는 강경파 세력이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협상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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