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뤄졌다” 빈라덴 사살 그날, 백악관에선 무슨 일이…[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4일 14시 00분


빈라덴 제거 10주년
그날 백악관 시츄에이션룸에서 생긴 일

“정의는 이뤄졌다.”

10년 전 이맘때쯤입니다. 2011년 5월 1일은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9·11테러를 일으킨 장본인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날입니다. 이날 한밤중 백악관 단상에 오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라는 말로 대(對)국민 성명을 끝맺습니다.

빈라덴 제거 작전에 대한 언론 보도는 많이 나왔습니다. 책도 여러 권 출간됐고,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영화도 있죠. 대부분 작전에 투입된 특수부대원이나 현장 요원들의 무용담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백악관 깊은 곳에서 언제, 어떻게, 어떤 결정이 이뤄졌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빈라덴 사살 10주년을 맞아 정부 당국자 증언, 관련 블로그 등을 통해 당시 비화들이 상당 부분 공개되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이 벌어졌던 2011년 5월 1일 백악관 시츄에이션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이 모여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이 벌어졌던 2011년 5월 1일 백악관 시츄에이션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이 모여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빈라덴 작전 개시 1개월 전쯤인 2011년 3월 29일 백악관 회의가 분수령이었습니다. 이날 정보 기밀을 다루는 500평방미터의 시츄에이션룸에 국가안보 각료들이 모였습니다. 시츄에이션룸에서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까지 끄고 열릴 정도의 극비 회의였죠. 각자 책상 위에는 두툼한 브리핑 북이 놓여있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A), CIA(중앙정보국), NGIA(지리정보국) 요원들이 1년 넘게 발로 뛰고 위성 사진을 판독해 모은 빈라덴 은신처 자료였습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은 이날 처음으로 빈라덴 추적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회의명은 ‘미키마우스 미팅.’ 회의명을 알리지 않으면 다른 백악관 직원들이 이상하게 여길까봐 존 브레넌 백악관 국가안보·대테러 보좌관이 급조해낸 이름이었습니다.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목표 장소를 “AC원”이라고 지칭합니다. 파키스탄 외곽에 있는 ‘아보타바드 목표물(Abbottabad Compound One)’의 약자죠. 그는 장관들에게 “다음 회의 때까지 제거 작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달라”고 합니다. 급습할 경우 수반되는 여러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 ‘예스’ 또는 ‘노’ 의견을 제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장관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리허설’이 펼쳐집니다. 특수부대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비밀 장소에 모여 3주간에 걸쳐 작전 실행 모의 연습을 합니다. 이들은 막 아프가니스탄 임무를 끝내고 귀국해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죠. 처음에는 왜 소집 명령이 떨어졌는지 모르다가 “이건 훈련이 아니다. 우리 목표는 빈라덴이다”라는 지휘관의 한마디로 분위기는 싹 바뀝니다. 파키스탄 레이더망을 피해 언제 헬기를 띄울 것인지, 착륙 때 소음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서부터 목표물 16km 내에 위치한 파키스탄 핵시설에 충격을 줄이는 방법, 요원들의 건물 진입 때 가려줄 나무 위치까지 세밀한 시나리오가 완성됩니다. 작전에 동원되는 무기가 파키스탄 정부나 중국의 손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재빨리 수거하는 훈련도 이뤄집니다.

빈라덴이 은신해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건물. 미 정보 당국자들에게 이 건물은 “AC원”으로 불렸다. 미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
빈라덴이 은신해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건물. 미 정보 당국자들에게 이 건물은 “AC원”으로 불렸다. 미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

4월 27일 2차 회의가 열립니다. 첫 발언권을 가진 게이츠 국방장관은 “노” 의견을 냅니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 실패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종말을 고(告)했다는 점을 주지시키죠. 다음에 나선 힐러리 국무장관은 파키스탄과의 외교 마찰에 대한 긴 설명을 시작해 “노”인가 싶었는데, “이번만큼 확실한 정보는 없다”면서 “예스”로 마무리합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실패할 경우 오바마 재선에 미칠 영향과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들어 “노”쪽으로 기웁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은 선의의 비판자인 ‘데블스 애드버킷’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실질적으로 찬성 내지 중립 태도를 보입니다. 실패 가능성이 적지 않은 공격이었던 만큼 찬성률은 40~80%였습니다.

반대론자들은 빈라덴이 은신처를 계속 옮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지도 모르는데 ‘AC원’을 공격해 망신을 자초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장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어차피 50대 50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시간만 흐를 뿐이다”며 상황 정리에 나섭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해 닷새 후인 5월 2일까지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합시다(It‘s a go).” 예상을 깨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틀 후인 29일 아침 7시 30분 공격 재가를 내립니다. 옷은 점퍼 차림. 이날 예정된 앨라배마 주 태풍 피해지 방문, 플로리다 주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 참관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미국 최대의 적을 제거하는 작전을 벌이는 것인데 마치 자잘한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국가안보보좌관 등 몇 명에게 서서 얘기하고 외출합니다. 결정은 신중하게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오바마 스타일입니다.

2011년 4월 29일(D-2) 빈라덴 제거 명령을 내린 뒤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를 방문해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를 가족과 함께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2011년 4월 29일(D-2) 빈라덴 제거 명령을 내린 뒤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를 방문해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를 가족과 함께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공격 예정일은 5월 1일로 정해집니다. 바로 전날은 백악관기자단 연례만찬(WHCD)이 열리는 날이었죠. 만찬은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유머 보따리를 풀어놓는 날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머 주제를 선정하는 작업과 빈라덴 사살 계획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유머 주제는 ’버서 운동‘(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적이 아닌 아프리카 케냐 출신이라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을 TV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빗대 조롱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만찬에 버서 운동의 주모자이자 ’어프렌티스‘ 진행자인 도널드 트럼프 부부가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여유롭게 유머를 소화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듭니다. 한방 먹은 트럼프는 분노한 얼굴이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바탕 청중을 웃긴 뒤 “신이시여, 우리 군을 보호 하소서”라는 진지한 대사로 마무리합니다. 당초 연설문에는 없는 문구였지만 만찬 시작 1시간 전에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추가됐습니다. 다음날 예정된 군 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겠죠.

2011년 4월 30일(D-1)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기자단 연례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조롱하는 오바마 대통령(위).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백악관이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유머 동영상을 준비했다(아래 왼쪽). 이날 만찬에 
참석했던 트럼프 부부(아래 오른쪽). 폴리티코
2011년 4월 30일(D-1)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기자단 연례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조롱하는 오바마 대통령(위).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백악관이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유머 동영상을 준비했다(아래 왼쪽). 이날 만찬에 참석했던 트럼프 부부(아래 오른쪽). 폴리티코

공격일 백악관 앞에 이색 풍경이 펼쳐집니다. 일요일인데도 장관들을 태운 세단들이 백악관에 줄지어 들어옵니다. 시츄에이션룸에 아침 일찍 집결한 이들을 위해 요기 거리를 사오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인근 코스트코에서 샐러드가 공수됩니다. “왜 샐러드냐”라는 장관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피자도 주문합니다. 각료 모임이라기보다 대학 동아리 파티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지휘센터는 3곳. 시츄에이션룸, 버지니아 근교 랭글리의 CIA 본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기지입니다. 오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골프도 치러 가고 카드 게임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지나치게 작전에 생각을 골몰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죠.

미 동부 시간 오후 3시 30분 작전이 개시됩니다. 목표물 앞마당에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헬기가 착륙합니다. 1대는 빈라덴 호위대의 총격으로 부서집니다. 건물에 진입한 대원들은 빈라덴이 은거한 3층에 진입합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신과 나라를 위해, 제로니모 제로니모 제로니모” 무전이 들려옵니다. ’제로니모‘는 빈라덴 제거 완료 암호명입니다. 아프간 기지에 작전을 진두지휘한 윌리엄 크레이븐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총사령관은 “제로니모 에키아(EKIA)?”라고 물으며 재차 확인합니다. “적은 사살됐나?(Enemy Killed in Action?)”라는 뜻이죠. “예스. 제로니모 에키아”라는 대답에 백악관, 랭글리, 아프간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당초 공격 과정을 시츄에이션룸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지켜볼 예정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옆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옮깁니다. 장관들도 대통령을 따라갑니다. JSOC의 브래드 웹 장군이 공격 현지에서 위성을 받아 시츄에이션룸 모니터로 송출하는 방이었죠. 그의 이름을 따서 ’웹룸‘으로 불렸습니다. 시츄에이션룸 모니터가 갑자기 고장 나 모두 웹룸에 몰려와 어깨를 맞대고 작은 모니터를 들여다봅니다. 유명한 사진이죠. 웹 장군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이라는 대통령은 고개를 흔듭니다.

2011년 5월 1일(D-0) 빈라덴 은신처 급습 장면을 위성 모니터로 시청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 시츄에이션룸 대형 모니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부속 기계실에 모여 시청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2011년 5월 1일(D-0) 빈라덴 은신처 급습 장면을 위성 모니터로 시청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 시츄에이션룸 대형 모니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부속 기계실에 모여 시청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공격에서 철수까지 48분이 걸립니다. 공격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지만, 시신을 비닐로 말아 포장한 뒤 착륙할 때 파손된 헬기 잔해를 수습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착륙 당시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이 눈치를 챘기 때문에 아프간기지의 크레이븐 총사령관은 몸이 달아오릅니다. 작전 개시 후 45분쯤 지나자 대원들에게 “하던 일 모두 스톱. 빨리 짐 싸들고 철수”를 지시합니다.

아프간기지에서 포장을 풀자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나옵니다. 얼굴 정면에 총격을 받아 식별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선 키를 통해 가늠해 봅니다. 빈라덴의 키가 6.4피트(195cm)인 것을 알고 있는 크레이븐 총사령관은 6.2피트(189cm) 키의 한 대원에게 “시신 옆에 한번 누워보라”고 즉석에서 지시를 내립니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빈라덴의 귀를 통한 ’95% 본인 확인‘ 판정을 받습니다. 파키스탄 군부는 현장에 즉시 조사 인력을 파견해 사살된 인물이 빈라덴임을 확인합니다. 작전이 성공해 미국이 시신을 가지고 사라진 만큼 외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축하한다”는 의사를 전해옵니다. 파키스탄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으니 미국은 공식 발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등 6명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빈라덴 사살을 알립니다. 발표문 준비를 거쳐 오후 11시35분 오바마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으로 긴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빈라덴 제거 작전이 성공한 뒤 대국민 연설문을 다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빈라덴 제거 작전이 성공한 뒤 대국민 연설문을 다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부하들의 충고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근거로 신속하게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라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리더의 조건‘입니다. 빈라덴을 잡기 위해 2년여에 걸친 치밀한 작전 수립과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준 오바마 전 대통령이야말로 리더십의 표본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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