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동반자이자 자선사업 동지였는데… 세계가 동경한 부부 “돌이킬수 없는 파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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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부부 이혼]게이츠-멀린다 ‘세기의 이혼’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의 이혼은 두 사람이 부부 사이를 넘어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서 ‘동지’ ‘동반자’ 관계를 오랫동안 보여 왔기 때문에 예상 밖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둘은 사업으로 일군 거대한 부를 빈곤 퇴치 등을 위해 쓰면서 사회공헌에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부부’로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둘의 부부 관계는 수년 전부터 삐거덕거리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 사내 커플에서 자선사업 ‘동지’로
둘은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멀린다는 빌 게이츠가 1975년 세운 이 회사의 마케팅 담당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멀린다는 2019년 회고록에서 “당시 사내 직원들끼리 저녁 자리가 있었는데 좀 늦었더니 모든 테이블이 채워져 있었고 딱 한 테이블에 두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었다”며 “내가 그중 하나에 앉았고, 몇 분 뒤에 빌이 와서 옆자리를 차지했다”고 썼다. 몇 개월 뒤 빌 게이츠는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둘은 연인 사이가 됐다.

사귄 지 1년 정도 지나 빌 게이츠는 결혼할지, 헤어질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멀린다는 2019년 ‘인사이드 빌스 브레인’이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빌의 침실로 들어가 보니 그가 방 화이트보드에 결혼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리스트를 만들어 적어 놓았다”고 회고했다. 멀린다는 같은 해 영국 선데이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내가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해줬다”고 했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는 1994년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부터 평범한 부부 관계를 넘어 인생의 파트너와 동반자로 성장했다. 1996년 MS를 떠난 멀린다는 2000년 빌 게이츠와 함께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따 설립한 이 재단은 연간 기부금 규모가 5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영리 민간재단으로 꼽힌다. 멀린다는 이후 여성, 교육, 인권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남편의 후광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셀럽’으로 부상했다. 빌 게이츠도 2008년 MS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재단 운영에 더 많은 힘을 보탰다. 재단은 기부금과 500억 달러에 이르는 재단 출연금을 바탕으로 바이러스 퇴치 등 세계의 보건의료와 빈곤, 아동교육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 “이전에도 수차례 파경 위기 넘겨”
둘의 관계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수년 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 지인들을 인용해 둘의 부부 관계가 붕괴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계속 함께 지내기로 하고 이혼을 참아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빌 게이츠가 MS와 버크셔해서웨이 이사회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동안의 회고록과 인터뷰 내용 등을 종합하면 갈등의 원인은 평범한 부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멀린다는 결혼 25주년이던 2019년 인터뷰에서 “빌이 하루 16시간씩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떤 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 결혼 생활이 힘들어 ‘내가 정말 (이 생활을) 할 수 있나’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멀린다는 결혼 생활 초기 첫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이 일에만 열중해 외로움을 느꼈다고 회고록에 털어놨다. 때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져 동등한 파트너십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재단 운영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멀린다가 빌 게이츠에게 재단의 연례 서한을 앞으로는 공동 집필하자고 제안했는데 거부당했고 이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혼 전까지 멀린다가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 여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둘 사이에는 제니퍼(25)와 아들 로리(21), 피비(18) 등 3남매가 있다. 장녀 제니퍼는 3일 인스타그램에 “모든 가족에게 힘든 시간이었다”며 “이혼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여러분의 친절한 말과 지지가 매우 소중하다”고 적었다. 멀린다는 법원에 낸 이혼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결혼 전 성(姓)인 ‘프렌치’를 포함해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로 적었다.

○ 재산 분할 이미 합의

1994년 미국 하와이주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왼쪽)와 아내 
멀린다(오른쪽)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하객과 포옹하고 있다. 하와이=AP 
뉴시스
1994년 미국 하와이주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왼쪽)와 아내 멀린다(오른쪽)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하객과 포옹하고 있다. 하와이=AP 뉴시스
빌 게이츠는 세계 4대 부자에 이름을 올린 억만장자여서 향후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인덱스 기준으로 그의 재산은 1460억 달러(약 164조 원)다. 두 사람은 재산 분할에 합의한 상태다. 이혼신청서에 “재산 분할은 별도 합의한 대로 법원이 승인해 달라”고 적었다. 재산 분할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천문학적인 몫이 멀린다에게 배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결혼 기간과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정도를 따져 분할액을 정하는데 멀린다는 27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과 재단을 공동 운영하는 등 기여한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재산을 어떻게 나누는지와 무관하게 둘은 각자의 재산을 생전에 대부분 사회에 환원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기빙 플레지’를 통해 재산의 95%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빙 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 부부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함께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운동이다.

부인 멀린다가 이혼 신청  법원에 제출된 둘 간의 이혼신청서에는 이혼 신청인이 멀린다,
 피신청인은 빌 게이츠로 각각 적혀 있다. 아래에는 ‘결혼 생활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미 연예매체 TMZ
부인 멀린다가 이혼 신청 법원에 제출된 둘 간의 이혼신청서에는 이혼 신청인이 멀린다, 피신청인은 빌 게이츠로 각각 적혀 있다. 아래에는 ‘결혼 생활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미 연예매체 TMZ

베이조스 재산분할 39조원… 브린은 비밀에 부쳐
이혼 재산분할 역대 사례는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중 그동안 액수가 가장 많았던 사례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2019년 이혼이다. 3일(현지 시간) 포브스 등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배우자였던 매킨지 스콧에게 아마존 발행 주식의 4%(당시 약 350억 달러·약 39조3200억 원)를 줬다. 헤지펀드 회사 동료로 베이조스를 만나 26년간 함께 산 스콧은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하고 초기에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줬다. 600억 달러에 가까운 자산을 보유한 스콧은 세계에서 세 번째 부자 여성이다. 2015년 이혼한 구글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아내 앤 워치츠키의 재산 분할 액수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둘은 합의 내용을 비밀에 부쳐 구체적인 액수가 공개되지 않았다.

사업가 겸 아트딜러인 앨릭 윌든스타인은 1999년에 이혼했는데 21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던 아내 조슬린 윌든스타인은 재산 분할로 38억 달러를 받았다. 이혼 당시 두 사람의 사치와 초호화 생활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원은 성형 중독인 조슬린에게 재산 분할로 받은 돈으로는 성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은 31년의 결혼 생활을 1999년 마무리했다. 이혼과 관련한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배우자 애나 토브가 17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나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배우 멜 깁슨의 이혼은 할리우드 역사에서 가장 많은 재산 분할 액수를 남겼다. 깁슨과 26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로빈 무어 깁슨은 4억2500만 달러를 받았는데 당시 멜 깁슨이 갖고 있던 전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27년 모범 부부’ 빌과 멀린다, 세계가 놀란 ‘세기의 이혼’
“더는 함께 성장 못해” 공동성명
164조원 규모 재산 분할 합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66·사진 오른쪽)와 멀린다 게이츠(57·왼쪽) 부부가 2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한다고 발표했다. 법원에 제출된 둘 간의 이혼소송 신청서에 따르면 1460억 달러(약 164조 원)에 이르는 빌 게이츠 재산을 나눠 갖는 데 서로 합의했다. 어떤 자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누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는 3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둘은 “우리는 3명의 놀라운 자녀를 키웠고 사람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세계에서 활동하는 재단을 설립했다”며 “우리는 그 임무에 대한 믿음을 계속 공유하고 재단에서 계속 함께 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더는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며 “새 삶을 개척하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공간과 사생활을 보장해 달라”고 썼다.

로이터통신 등은 두 사람이 이날 미국 시애틀 킹카운티법원에 이혼 신청서를 냈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이혼 신청인은 멀린다, 피신청인은 빌 게이츠로 각각 기재돼 있다. ‘혼인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신청서에 담겨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 조유라 기자
#빌 게이츠#멀린다#이혼#재산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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