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스 웡 前 美국무부 대북정책특별부대표 인터뷰]
北 대화 안 나설 때 핵개발 지속… 트럼프정부도 대북 단계조치 논의
싱가포르 합의, 김정은 약속에 의미… 北 실무자들, 비핵화 논의 자체 꺼려
한국, 남북교류 시도 美와 조율 필요… 北이 한미 틈 벌리지 않도록 해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일괄타결(grand bargain) 시도뿐 아니라 단계적으로 조치들을 취해나가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런 노력에 북한이 응하지 않은 것이다.” 알렉스 웡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부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일괄타결’로 규정되는 것이 아쉬운 표정이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새로운 대북정책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일괄타결이나 ‘전략적 인내’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다. 웡 전 부대표는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를 겸직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주요 인사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밑에서 미국의 대북협상을 책임졌던 대북정책특별대표실의 2인자였다. 지금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서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연구를 맡고 있다.》
그는 7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과 전략적인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접근 방식의 대전환이 요구됐고 그런 관점에서 일괄타결 시도가 필요했다”며 북한에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 생화학무기의 폐기까지 요구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구체적인 이행 방법에 있어서는 동시적, 병행적 접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왔다”며 “우리가 뭔가를 하기 전에 북한이 모든 것을 먼저 할 것을 기대했던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을 공개했는데.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어떻게 하면 북한의 관여를 이끌어낼까를 가장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전략을 다 공개하지는 못할 것이다. 협상 전략인 만큼 내부적으로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우리가 논의했던 내용들, 실제 벌어지고 있던 일들이 언론에 보도된 건 절반이 채 안 됐다. 그만큼 신중하게 기밀을 유지했다.
현 시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무엇보다 억지(deterrence)의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협상과 대화에 나서지 않을 때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이 지속되고 있으며,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미국과 동맹국에 위협이 된다. 이 관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아마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외교적 노력에 관여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훈련의 축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지금 희박해지고 있다. 북한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면 외교적 관여를 거부하고 있는 게 명백하다. 그렇다면 훈련을 다시 원위치 시키는 것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재개 전까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편협하고 잘못된 관점이다. 북한 이슈는 전담 대표가 필요한 몇 안 되는 자리 중 하나다. 중국은 최근에 새로운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임명했다. 다른 유관국들이 고위급 담당자를 지명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이를 공석으로 놔두는 것은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메시지가 된다. 대북정책협상대표실은 실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도 많은 일들을 한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 북한 문제와 관련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 물밑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일,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의회를 접촉하고 필요한 캠페인을 벌이는 일 등은 성공적인 북한 비핵화 협상을 위한 핵심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의 토대로 싱가포르 합의를 언급했다.
“싱가포르 합의는 정상 레벨에서 김정은이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권한을 가진 지도자가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전까지는 우리가 갖지 못했던 중요한 포인트다. 싱가포르 합의는 출발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심은 거기서 시작해서 실무 단계의 대화로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 그 때 실무 협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우리가 그 단계에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협상이 깨질 것으로 예상했었나.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늘 협상의 옵션에 들어있다. 협상 상대방이 불합리한 요구를 하거나 그 어떤 유연성도 보이지 않을 때, 합의를 이룰 수 없을 때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걸 보여주지 못한다면 상대방은 이미 협상에서 이긴 것이다.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노이 회담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다음 협상 테이블을 차리기 위해서는 이번에 협상을 엎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협상 타결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나쁜 딜은 원하지 않는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 동결(freeze)을 대가로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있었다. 핵 동결에 대한 당시 내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큰 로드맵 하에서 나오는 동결이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종적인 비핵화 단계에 합의하고 동시적, 병행적으로 이를 향해 나아가는 여러 조치 중의 하나로서 이뤄지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도 이 문제에는 상당히 열려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핵 동결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북한과의 군축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의회와 행정부 등에서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들은 북한의 비핵화가 몽상(pipe dream)이며, 북한 핵 문제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서 북한의 핵 역량을 감소시키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북한에 양보하면서 핵개발을 지속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는 비확산 체제에도 매우 부정적이다. 핵개발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훼손하고 빼앗아버리는 결과.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핵군축의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은 북한에 좀 더 회의적인 게 아닌가.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실패한 경험들이 있다.
“민주당 행정부만 그랬던 게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부터 지난 30년 가까이 미국은 북한과 관련해 나쁜 경험들을 계속 했다. 북한 문제는 이제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의 큰 그림에서 봐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 지역의 암흑의 권력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협상에서 시간에 쫓기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며 고통받아온 쪽은 북한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고 해서 당장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타격받는 문제는 없다. 반면 북한은 안 괜찮다.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 때를 포함해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다. 그 때 본 북한은 어떤 곳이었나.
“북한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갔다.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북한 측 카운터파트들이 능력은 있었지만 권한이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비핵화 논의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비핵화 논의를 어떻게든 피하거나 연기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좌절감을 느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브로맨스는 협상에 도움이 됐는가.
“분명 도움이 됐다고 평가한다. 김정은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그가 가졌을 불만과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한 번도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이 없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아직까지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미사일 발사나 또 다른 핵 위기가 없었던 것은 두 정상 간 커넥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트럼프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나.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조합은 북한에 대단히 행운이었다. 당시 북한과의 협상은 (한미) 두 정상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북정책을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다. 김정은에게는 제한적으로 열렸던 창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앞서나가려는 것을 견제하며 ‘비핵화 협상과 발맞춰(in lockstep)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남북경협 시도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평가는 어땠나.
“신뢰 구축을 위한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평양의 협조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남북협력과 비핵화는 서로 강화하는(mutually reinforcing) 프로세스다. 다만 미국 측과 조율을 더 했어야 한다. 또 북한이 한국과 미국 간의 틈을 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앨릭스 웡 前부대표는
앨릭스 웡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부대표 겸 북한 담당 부차관보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2012년 밋 롬니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했고, 이후 톰 코튼 상원의원의 외교안보 분야 자문역을 맡았다. 지난해 2월 유엔 특별정무 차석대사에 임명됐으나 의회의 최종 승인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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