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은 세계 경제가 팬데믹에서 차츰 벗어나 회복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주식 등 자산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세계 각국의 자산 시장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들어 가파른 물가 상승을 보여주는 지표는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심상치 않다.
미국 노동부는 12일(현지 시간)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4.2%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3.6%보다 높은 것으로,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글로벌 물가가 뛰었던 2008년 9월 이후 거의 13년 만에 최대치다.
중국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중국의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년 전보다 6.8% 올라 3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PPI가 줄곧 마이너스(―)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올 들어 상승폭이 매우 가팔라졌다.
각종 원자재 값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 상품시장에서 옥수수 값은 올 들어 50% 폭등했다. 대두 가격도 2012년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목재 가격 역시 예년의 4배가량 올라 최근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의 필수 원자재인 구리 가격도 지난 주말 2011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로 올랐다. 이런 원자재 값 강세는 소비재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WSJ는 “신선식품부터 냉장고, 식기세척기까지 생필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반도체 공급난 역시 자동차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JD파워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에서 팔린 신차 모델 평균 가격은 3만7572달러로 1년 전보다 7% 올랐다. 최근 미국의 최대 송유관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해킹을 당해 운영이 중단된 것도 휘발유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1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값은 갤런당 2.985달러로 상승해 2014년 11월 이후 약 7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처럼 휘발유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남동부 지역에서는 주유소에 차량이 길게 늘어서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버지니아 등 일부 주의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미리 채워 넣으려는 차량이 몰리면서 휘발유가 동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473.66포인트(1.4%) 떨어진 34,269.16에 거래를 마쳤다. 올 2월 말 이후 두 달 반 만에 최대 폭의 하락이다. 증시 하락 폭이 커지자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23.73으로 두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증시가 물가 상승에 특히 취약한 것은 향후 통화당국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 경우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도 최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일부 자산의 가격이 역사적으로 높은 상태”라며 “위험 선호 현상이 꺼지면 자산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자 연준의 주요 당국자들은 이를 진화하기 위해 일제히 나섰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이날 한 행사에서 “아직 물가 상승 목표치까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CNBC방송에 출연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우리는 아직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도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르면 올해 말부터 긴축 정책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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