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달 16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 정상회담이자 적대국의 정상과 마주앉는 첫 번째 자리다. 푸틴 대통령을 ‘독재자’, ‘살인자’라고 부르던 바이든 대통령이 그와 어떤 한 판 승부를 벌일지를 놓고 워싱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미러 정상회의 회담 계획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미러 관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회복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정상은 긴급한 현안들을 모두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푸틴 대통령과 2차례 통화했고 4월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그가 제3국에서의 회담을 제안한 대로 회담 장소는 모스크바나 워싱턴이 아닌 스위스 제네바로 정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달 12, 13일 영국 주요 7개국(G7) 정상회에 이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회담 등에 참석한 뒤 제네바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부터 푸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비판해왔고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면전에서 “당신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 같다”고 일갈한 적도 있다. 대통령 취임 후 3월 언론 인터뷰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killer)’라고 불렀다. 4월에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사이버 해킹을 이유로 제재와 함께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 정부가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탄압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한 규탄 성명을 이어가고 있다.
미러 관계는 악화일로였지만 양국은 서로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 또한 인식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중국과 격한 경쟁을 높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전선을 벌리지 않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 관리를 해놔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독일 간 천연가스 공급 가스관을 연결하는 ‘노드스트림2’ 사업을 제재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동맹국 독일과의 갈등도 부담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는 나서지 않으면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결정한 이유다. 사실상 임기 내 달성이 어려운 비핵화 같은 난제 없이 러시아와는 관계 개선이라는 성과를 낼 여지도 열려 있다.
미러 양국은 민감한 현안들을 모두 다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협 및 사이버 해킹,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정부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관계 및 배후 영향력에 대한 문제도 회담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신(新)전략무기감축협정인 ‘뉴 스타트(START)’ 연장에 합의했지만 더 장기적인 군축 논의도 요구받고 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당장의 극적인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상호 이해를 높이고 관계 악화를 막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미국의 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까다로운 상대이지만 의사결정 과정에 친분이 많이 작용할 여지가 있고, 바이든이 다룰 필요가 있는 상대라고 보고 있다.
야당은 푸틴 대통령의 인권탄압 등을 문제 삼아 미러 정상회담을 비판했다. 공화당 벤 새스 상원의원은 “푸틴에게 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을 주고 그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나쁜 생각이고 약한 대응”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사키 대변인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은 선물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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