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팔 관계 복원 시동…예루살렘 영사관 복원키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6일 16시 19분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대화 채널 역할을 하다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서 폐쇄됐던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행보 속에 크게 악화됐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대화 노선을 걷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그 주도세력인 파타 측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 순방에 나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5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도시 라말라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협력하고 지원하는 방향에서 영사관 복원을 추진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관계를 미국과 팔레스타인 관계를 재건하려 한다”고도 했다. 다만 이날 영사관 복원 시점은 명시하지 않았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친이스라엘 노선을 노골화하던 가운데 2018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미국 내 비공식 대사관 역할을 해오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워싱턴사무소까지 폐쇄하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 정부와의 교류를 단절했다.

미국은 그해 팔레스타인 대사관 역할을 하던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을 폐쇄키로 결정하고 2019년엔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통합하는 조치를 마저 단행했다. 당시 결정에 의해 예루살렘 영사관 지위는 이스라엘 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부로 강등됐다. 바이든 행정부가 예루살렘 영사관을 다시 열게 되면 팔레스타인의 외교 관계가 격상된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최근 이스라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약 7500만 달러(837억 원)규모 개발경제원조를 의회에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긴급재난 지원금 550만 달러(61억 원)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를 통해 3200만 달러(358억)을 지출하겠다고도 했다. 국제사회와 협력해 150만 회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기부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마저 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가자지구를 실질 지배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를 통하지 않고, PA와 협력해서 가자지구 지원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내 정착촌 추진에 속도를 내고,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내 이슬람 성지인 알아끄사 사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팔레스타인 내에선 무장투쟁 노선도 병행하는 하마스에 대한 상대적 지지가 올라가는 흐름이 뚜렷하다.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걷는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 중 한 곳 파타와 여기서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인기가 시들해지고, 영향력도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오자 미국이 지원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블링컨 장관은 26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중동 순방에 나섰다. 이틀간 예루살렘과 요르단 서안의 팔레스타인 도시 라말라, 이집트 수도 카이로, 요르단 수도 암만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이달 20일 이스라엘군과 하마스가 무력충돌 열흘 만에 휴전 합의를 이룬 것과 관련해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블링컨 장관은 압바스 수반을 만나기 직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먼저 만나 미국이 이스라엘 방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6일 블링컨 장관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바이든 미 대통령의 최근 이스라엘 지지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가지회견에서 “(중동서) 독립적인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스라엘도 블링컨 장관 순방 중에 미국의 우호 관계를 과시해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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