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에 가세요? 우리 후보에 대해 잠시 설명할게요.”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헬스키친 지역의 한 건물 주변. 삼삼오오 짝을 지은 선거 운동원들이 행인에게 전단을 나눠주며 이 건물에서 실시되는 집권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 선출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운동원들은 지지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후보의 강점을 설명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서는 22일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선출이 사실상의 시장 선거로 여겨진다. 이날 선출된 후보는 11월 2일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와 맞붙는다. 그 승자가 내년 1월부터 4년간 인구 830만 명의 미 최대 도시를 이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선거에 총 13명이 출마했다. 그중 뉴욕경찰(NYPD) 출신의 흑인 남성 에릭 애덤스 브루클린 구청장(61), 백인 여성 캐스린 가르시아 전 뉴욕시 위생국장(51), 민주당 진보층의 지지가 두꺼운 흑인 여성 인권변호사 마야 와일리(57), 대만계 정보기술(IT) 기업가로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해 전국적 인지도를 쌓은 앤드루 양(46)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백인 남성 스콧 스트링어 뉴욕시 감사원장(61), 한국계 금융인 아트 장 후보(58) 등도 뛰고 있지만 4명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평을 얻고 있다.
사전투표장서 확인된 열기
이날 사전투표장에서 만난 백인 남성 브라이언 클램핏 씨는 와일리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와일리 후보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토론을 다 이겼다. 여론조사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선 하원의원이지만 미 젊은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급의 인지도와 명성을 지닌 ‘젊은 정치인의 기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뉴욕주 하원의원(32·뉴욕) 또한 성향이 비슷한 와일리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투표를 이미 마쳤다는 노인 하워드 프레이 씨는 가르시아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르시아는 위기관리에 강점이 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생국장 시절 뉴욕시 급식, 거리 위생,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을 관장한 가르시아 후보가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맞은 지금 적합한 시장이라는 의미다.
얼마 후 취재진이 웅성거렸다. 양 후보가 부인과 함께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는 한때 여론조사에서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최근 애덤스 후보 등의 약진으로 3, 4위권으로 처졌다. 지지자와 ‘셀카’를 찍는 등 시종일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인 양 후보는 “아직 승산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론이다. 뉴욕 시민은 변화를 원한다”며 자신이 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양 후보는 다음 날인 13일에는 맨해튼 남부의 한 건물에서 수백 명의 지지자를 모아 집회를 열었다. 역시 대만계인 그레이스 멩 뉴욕주 하원의원(46) 등 양을 지지하는 정치인이 찬조 연설을 했다. 양의 이름을 쓴 플래카드를 든 지지자는 “22일은 양이 뉴욕시장 후보로 확정되는 날”이라고 외쳤다.
치안·경찰 개혁 등 의제
선거가 채 1주일도 남지 않은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람은 애덤스 후보다. 3∼9일 WNBC와 폴리티코 등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24%의 지지를 얻어 가르시아(17%), 와일리(15%), 양(13%), 스트링어(7%) 등을 앞섰다.
브루클린 토박이인 애덤스는 15세 때 불법 침입을 이유로 경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았다. 이로 인해 경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22년간 NYPD로 재직하며 경찰 개혁을 주창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치안 불안을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자 최근에는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도 보수층의 두꺼운 지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여론조사를 보면 범죄에 대처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가 됐다. (경찰 출신인) 애덤스 후보의 부상은 이런 안전에 대한 우려와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가르시아 후보는 위생국장 경험이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시대의 시장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무원 출신인 애덤스와 가르시아는 중도 성향이며 경찰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반면 와일리 후보는 NYPD 예산 중 상당수를 떼어내 낙후된 지역에 투자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경찰 예산과 인력을 늘린다고 강력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아니며, 지난해 5월 백인 경관의 목조르기로 숨진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태에서 보듯 경관의 잔혹 행위 또한 근절해야 한다고 외친다.
인종결집·선호투표제가 변수
선거의 막판 쟁점과 변수도 많다. 우선 아시안, 흑인 등 특정 인종 유권자의 결집 여부다. 양 후보는 올해 초만 해도 잇따른 아시아계 대상 혐오 범죄의 반사이익을 누렸지만 NYT 등 주류 언론과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등이 잇따라 그를 비판하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NYT는 지난달 양이 2011년 설립한 사회단체 ‘벤처포아메리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150개에 그쳤다고 질타했다. 크루그먼 교수 역시 NYT 기고를 통해 “기본소득 등 양의 경제 상황 진단 및 해결책이 모두 틀렸다. 그가 좋은 시장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혹평했다. 지난달에는 뉴욕데일리뉴스가 아시아계 특유의 찢어진 눈을 강조한 그의 만평까지 실으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더 커진 상태다.
아시아계 유권자가 그를 위해 얼마나 결집할지, 민주당 경선 결과를 좌지우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흑인 유권자가 애덤스 후보와 와일리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지 관심거리다. 흑인 유권자는 현 빌 더블라지오 시장의 민주당 내 후보 선출, 본선 승리 등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백인이지만 흑인 아내를 두고 있으며 재임 내내 흑인 친화적 정책을 폈다.
뉴욕시가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독특한 투표 방식, 즉 선호투표제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 단 1명만 고르는 게 아니라 최대 5명까지 자신의 선호도순으로 후보를 써낼 수 있다. 투표자들이 꼽은 1순위만으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2순위 표를 다른 후보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개표를 이어간다. 이를 감안할 때 1순위 투표를 얻는 것 못지않게 2, 3순위 선호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들 사이에서 딱히 거부감이 없고 무난하게 폭넓은 지지를 얻는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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