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팟캐스트 방송서 밝혀 “발트해 연안국 등서 수백만명 숨져
화해의 손 내민 희생자-후손에 감사 독일이 그들에 한짓 생각하면 기적”
“고르바초프 개혁, 獨통일에 도움 러 반정부 인사 탄압 마음 아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가 80년 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을 ‘독일인의 수치’라며 사죄했다. 외신은 9월 정계 은퇴를 앞둔 메르켈 총리가 겸손한 모습으로 여전히 국민의 지지와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19일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팟캐스트 방송에서 며칠 뒤인 22일은 80년 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날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은 독일 국민에게 수치심의 이유(a reason for shame)”라면서 “인정사정없는 침공과 침공 지역에서 가해진 끔찍한 일들에 대한 수치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수백만 명의 희생자,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빚을 졌다. 화해의 손을 내밀어준 많은 이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했다. “독일이 그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는 기적에 가깝다”고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39년 독일은 소련 슬로바키아와 손잡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 당시 독일 총통은 장기적으로는 소련이 독일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해 소련을 배신하고 1941년 6월 22일 침공했다.
메르켈 총리는 “히틀러의 군대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포함한 발트해 연안 국가들 등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또 독일이 폴란드에 이어 소련까지 쳐들어간 것을 가리켜 “독일이 ‘끔찍한 다음 장(the next terrifying chapter)’을 연 것”이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재임 중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여러 번 사과했다. 2013년에는 독일 뮌헨의 옛 나치 강제수용소(현재 다하우 추모관)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마음에 가득히 차오른다”고 했다. 2019년에는 폴란드의 옛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독일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 상상할 수 있는 선을 넘은 범죄 앞에 진심으로 부끄럽다”고 참회했다.
정치 지도자가 자국의 과거사와 관련해 치부를 드러내고 사과하는 데에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국내 보수 세력의 비판을 받는 등 인기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60% 이상은 여전히 메르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인도 매체 더스테이츠맨은 “메르켈은 전 세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리더”라며 “겸손, 균형, 안정감, 상식의 미덕을 보여줬다”고 20일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 중 러시아와 소련 지도자를 비교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을 언급하며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 개방) 정책은 1990년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고 러시아와 독일의 시민사회 교류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크림반도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독일과 유럽연합(EU)은 지금의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반정부 인사와 시위대가 탄압받고 있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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