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명 갇힌 美 아파트 붕괴 현장, 희생자 9명으로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8일 0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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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 인근의 아파트 붕괴 현장. 12층 높이 아파트가 무너진 지 사흘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150명이 넘는 실종자가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은 먼지와 매캐한 냄새로 뒤덮였다. 이곳에서 만난 구조대원 메기 캐스트로는 “붕괴 당일 이후 지금까지 3시간밖에 못 잤다”면서도 “잠은 나중에 자면 되지만 지금은 우리를 믿고 있는 실종자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붕괴 건물 맞은편 테니스장 벽면에는 실종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꽃다발, 양초들이 놓였다. 리오 소로 씨는 사진 속 한여성을 가리키며 자신의 친구라면서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고 했다. 주민들은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이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26, 27일 이틀간에만 사망자가 추가로 5명 늘어 이번 사고로 확인된 누적 희생자는 모두 9명이다. 실종자가 150명이나 돼 사상자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소방당국과 구조대는 밤샘 수색을 사흘째 이어가면서 매몰자를 찾는 데 온힘을 쏟고 있지만 수색과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니엘라 레빈카바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시장은 26일 저녁브리핑에서 “수색과 구조를 계속하고 가능한 한 모든 생명을 구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라고 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소방당국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 지 시간이 좀 지났다”면서도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색과 구조에 생각보다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사고 아파트가 이른바 ‘팬케이크 붕괴’를 했다는 점이 지목되고 있다. 팬케이크를 여러 장 쌓아놓은 것처럼 각 층이 대략적인 틀을 유치한 채 겹겹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붕괴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부분이 손상될 경우 주로 발생하는데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팬케이크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직 구조대원인 그레그 파브는 CNN 방송에 “팬케이크 붕괴가 일어나면 각 층이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하중이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층의 잔해가 한꺼번에 눌려 쌓이기 때문에 잔해 속에 생존자가 버티고 있을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아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사고 직후부터 붕괴 현장 깊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도 구조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화재 연기와 각종 먼지가 구조 현장을 뒤덮은 데다, 간헐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잔해 더미를 걷어내는 작업이 어려워졌다. 구조 작업 도중 발생할 수 있는 2차 붕괴 위험도 여전하다. 에리카 베니타스 소방구조대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잔해들 사이 공간이 매우 좁아 (구조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수색 작업을 위한 진입이나 외부에서의 관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붕괴된 아파트는 3년 전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경고를 받고도 계속 방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서프사이드 당국은 2018년이 아파트의 안전도에 대한 보고서에서 “일부 가벼운 손상도 있지만 콘크리트가 부식된 부위는 대부분 신속하게 수리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건축기사 프랭크 모라비토는 특히 야외 수영장과 지하 주차장의 결함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수영장 상판 아래에 있는 방수제에 문제가 생겼고 이 때문에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판에 중대한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다”며 “이 방수제를 교체하지 않으면 콘크리트 부식이 엄청난 속도로 확대될 것”이라고 적었다.

지하 주차장 역시 곳곳에 금이 가는 등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콘크리트 벽과 기둥에 금이 가고 부스러진 곳이 많이 관찰됐다”면서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내부 철근이 드러난 곳도 있다. 아파트 관리를 맡은 주민위원회 측은 뒤늦게 보수 공사에 나서기로 결정했지만 공사에 착수하기 직전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붕괴 사고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플로리다국제대 지구환경대 사이먼 브도빈스키 교수는 지난해 연구에서 이 아파트가 1990년대부터 연간 2mm씩 침하했다고 밝혔다. 아파트가 40년 전 간척지에 세워졌는데 기후변화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건물과 지반에 바닷물이 스며들어 구조를 약화시켰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건설 전문가인 에번 벤츠 토론토대 교수는 NYT에 “붕괴를 유발한 것은 빌딩의 아랫부분, 아마도 주차장 부근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붕괴는 디자인 실수나 건축 재료의 문제, 건설·관리상 착오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카바 시장은 26일 카운티 내 40년 이상 된 모든 노후 건물에 대해 30일간의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붕괴된 아파트도 40년 전인 1981년에 지어졌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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