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보자’ 수만명 노마스크…美독립기념일 환희·불안 공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5일 14시 44분


코멘트
워싱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인파
워싱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인파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 시간) 오후 7시 워싱턴의 내셔널 몰. 하이라이트 행사인 불꽃놀이가 시작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지만 넓은 잔디밭에는 벌써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성조기를 흔들며 노래를 열창하는 사람들로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거나 야외용 의자를 가져와 십여 명씩 붙어앉은 경우도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안드레스 루비오 씨는 “연휴기간에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으로 여행을 왔다”며 “백신접종을 완료했고 이제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제로(0)”라고 했다. 그는 ‘델타 변이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워싱턴 주민인 알리샤 브라운 씨는 주변의 인파를 가리키며 “이게 우리의 삶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증거”라며 “불꽃놀이까지 볼 수 있게 돼 너무 신난다”며 웃었다.

링컨기념관 앞의 중심부에 쳐진 펜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보안검색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에만 20~30분이 걸릴 정도였다. 행사 때문에 워싱턴으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이 통제되면서 지하철 이용객도 부쩍 늘었다. 방역당국의 권고에 따라 지하철에서는 대부분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플랫폼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밀집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칸마다 승객이 1, 2명씩만 있는 ‘유령 지하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뉴욕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인파
뉴욕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인파
뉴욕과 시카고, 보스턴 등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 불꽃놀이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뉴욕에서는 유명 백화점 메이시스가 독립기념일에 진행하는 미국 최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롱아일랜드시티 갠트리 파크 등지에 수만 명이 모였다. 1년 전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불꽃놀이가 사전에 공지되지 않은 장소에서 ‘불시에’ 진행됐고 일부 나들이객 외에 관람객을 찾기 어려웠던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환희 이면에 스멀거리는 불안감
AP Photo
AP Photo
백악관은 이날 야외 잔디밭인 사우스론에 필수 분야 근로자와 군인, 이들의 가족 등 1000명을 초청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이 진행한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다. 백악관은 참석자들의 백신 접종 여부를 묻지 않았고, 음식과 음료수가 제공된 행사에서 마스크 착용도 요구하지 않았다. 미국의 일상이 팬데믹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내에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여전히 스멀거리고 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데다 미국인의 30% 이상이 여전히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독립기념일까지 성인의 70%에게 최소 1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결국 이는 미달됐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현재까지 1회 접종을 한 미국 성인은 67%로 목표치에서 3%포인트 부족하다. 완전히 접종을 끝낸 성인은 58%로 집계됐다.

AP통신은 “아직도 200여 명이 매일 코로나19로 사망하고 있고 수천 만 명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며 “임무수행 완료를 선언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CNN방송도 “환희의 이면에는 전염성 높은 델타 변이 감염과 백신 접종 거부자 등으로 미국이 여전히 팬데믹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바이러스와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AP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의 독립 선언에 어느 때보다 가까워져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의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코로나19와의 전투가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독립기념일에 ‘코로나19로부터의 독립’도 함께 선언할 것이라는 당초 현지 언론들의 예상보다는 신중한 톤이었다.

그는 “미국은 이제 함께 돌아오고 있다”며 “우리는 팬데믹과 고립, 공포와 고통, 가슴 찢어지는 상실 속에 보낸 1년간의 어둠에서 다시 일어섰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과정에 대해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주목할 성과 중 하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바이러스는 아직 정복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것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않으며, 더 이상 우리나라를 마비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백신 미접종자에게 접종을 촉구하며 “이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매일 코로나19 관련 수치를 브리핑받고 있으며 참모들에게 “델타 변이가 확산될 경우 미국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백악관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했던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이달 말 시한 만료 이후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전역의 접종 속도는 매주 1백만 도스 분량 수준으로 주춤해진 상태다. 워싱턴 및 20개 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30개 주는 여전히 목표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델타 변이에 감염된 사람은 전체 감염자의 25%에 달한다. 바이든 행정부 측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너무 일찍 긴장을 풀었다”며 아직은 대유행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