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브리핑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고별의 인사를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옆에 서 있는 메르켈 총리를 부른 뒤 “독일과 미국의 파트너십은 당신이 이룩한 토대 위에서 더 강하게 지속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도 정상회담에서 당신을 만나던 게 그리워질 것 같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도 바이든 대통령을 “친애하는 조(Dear Joe)”라고 여러 차례 부르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파트너일 뿐 아니라 매우 가까운 친구”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회담 도중 메르켈 총리를 향해 “개인적인 친구일 뿐 아니라 미국의 친구”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을 방문한 첫 유럽 정상이다.
올 10월 임기가 끝나는 메르켈 총리의 방미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는 총리가 된 2005년부터 16년 동안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바이든 등 4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했다. 이날 워싱턴 방문은 재임 중 23번째로 백악관 방문 횟수도 10여 차례나 된다. 이 점을 들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메르켈 총리는 16년 간 이곳을 자주 방문해서 나보다 백악관 집무실을 더 잘 안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을 자주 만나왔던 메르켈 총리도 트럼프 전 대통령만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독일과 안보, 무역 등의 현안에서 적지 않은 이견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방위비 기여를 충분히 안 한다고 압박하면서 주독미군을 3분의1 가량 줄이겠다는 엄포를 내놨다. 독일을 ‘러시아의 인질’이라고 폄하하면서 메르켈 총리와 통화에서 그에게 “멍청하다”고 모욕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이나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하는 등 트럼프가 ‘마이웨이’ 외교 노선을 보일 때마다 이를 비판하며 맞대응했다. 두 사람의 악화된 관계는 2017년 3월 메르켈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의 악수 요청에 불응했던 장면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이날 회담은 불편했던 과거를 접어두고 양국 관계를 확실히 복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등에 맞서 양국의 협력을 증진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메르켈 총리는 회견에서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지하는 나라들”이라며 “인권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독일은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공유하고 개방적인 세계를 수호하는데 전념한다는 내용의 ‘워싱턴 선언’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모든 부문에서 완전한 의견일치를 이룬 것은 아니다. 두 정상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에 대해서는 이견을 노출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시킨다며 우려를 표명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이런 관점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좋은 친구도 의견을 달리할 때가 있다”면서 “다만 메르켈 총리와 나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이웃나라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정상은 이날 이례적으로 만찬까지 같이 하며 우호 관계를 과시했다. 만찬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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