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처음 참석한 전몰자 추도식에서 역사에 대한 반성 언급 없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강조했던 ‘적극적 평화주의’를 답습했다. ‘아베 내각 계승’을 내 건 스가 총리 역시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5일 오전 일본 태평양전쟁 패전(종전) 76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스가 총리는 추도문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는 신념을 지켜 나가겠다”며 “우리나라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 아래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적극적 평화주의가 추도식에서 언급된 것은 지난해 아베 전 총리 이후 2번째다.
아베 전 총리 집권 시절인 2013년 도입된 적극적 평화주의는 겉으로는 국제사회 평화 수호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위해 자위대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개념이 내포돼 있다. 스가 총리는 단어 뿐 아니라 ‘적극적 평화주의 깃발 아래’ 등 표현까지 지난해 아베 전 총리의 추도사를 답습했다. 아사히신문은 “스가 색(色)이 드러나지 않은 추도사였다”고 비판했다.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 책임 및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참회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아베 내각을 따랐다. 전몰자 추도식에서 가해 책임 언급이 없는 것은 제2차 아베 내각 발족(2012년) 이후 9년째다. 스가 총리의 노골적인 답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미흡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가을 총재선거와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의 결집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깊은 반성 위에서 다시는 전재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가해 역사에 대해 반성했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는 이날까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 등 총 5명의 각료가 참배해 제2차 아베 내각 발족 후 가장 많았다. 아베 전 총리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으며 스가 총리는 참배 대신 자민당 총재 명의로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를 공물로 보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최근 30년 간 역대 총리들의 추도사에서도 일본 정부의 우경화 움직임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 등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가 계승돼 왔지만 2012년 아베 전 총리 재집권 후에는 이런 표현들이 사라졌다.
한편 중국 국방부는 14일 기시 방위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우첸(吳謙) 국방부 대변인은 “침략 역사에 대한 일본의 잘못된 태도가 드러나고, 국제질서에 도전하려는 음험한 속셈이 나타난다”며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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