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14일(현지 시간) 아침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724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부상자가 수천 명이 넘는 데다 실종자 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상황이어서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2010년 최소 22만 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 피해를 겪었던 아이티 국민들은 공포에 빠졌다. 아이티는 지난달 발생한 대통령 암살 사건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국은 더욱 혼란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리엘 앙리 총리는 한 달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9분 아이티 프티트루드니프에서 남동쪽으로 13.5km 떨어진 곳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났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서쪽으로 125km 떨어진 곳이다. 지진으로 최소 860채의 집이 완전히 무너졌고, 700채 이상이 훼손됐다. 지진파가 최초로 발생한 진원(震源)의 깊이가 10km로 얕아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규모 4, 5의 여진이 10여 차례 이어졌고 한때 지진해일(쓰나미) 경보도 발령됐다. 지진 발생지에서 320km 떨어진 자메이카에서도 진동이 감지됐다.
외교부는 이번 지진과 관련해 아이티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피해가 보고된 내용은 현재까지 없다고 밝혔다. 아이티에는 기업체 직원과 자영업자, 선교사 등 150∼170명의 한국인이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1년전 지진 피해도 복구 안됐는데… 최빈국 아이티의 비극
아이티 덮친 7.2 강진
최소 22만 명의 사망자를 낸 11년 전의 지진 피해도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14일 다시 강진이 발생하자 아이티 국민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지진이 나자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길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서부 예레미와 레카이 등의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장 마리 시몬(38)은 로이터통신에 “사람들이 건물 잔해에서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끄집어내고 있다”며 “시장에 갔다가 지진을 느끼고 급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곳곳에서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목욕을 하고 있던 그의 부인은 2세 딸을 데리고 알몸으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으려는 구조작업은 밤새 계속됐다.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 더미에 파묻혀 있던 생존자를 힘겹게 끌어올리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도 했다. 예레미 생안토닌 병원 책임자는 “실려 오는 부상자가 너무 많아 감당하기 어렵다”며 “응급실이 다 차서 야외에 텐트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60%가 빈곤층인 아이티는 잇단 자연재해와 전염병, 빈곤 등에 시달려온 서반구 최빈국이다. 2010년 규모 7.0 지진에 이어 2016년 아이티를 강타한 허리케인 매슈의 피해도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실종자 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아이티는 16일부터 열대성 태풍 ‘그레이스’의 영향권 안에 들 가능성이 높아 추가 피해와 구조 및 피해 복구에 차질이 예상된다.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에 따르면 ‘그레이스’는 16일 밤에서 17일 사이 아이티를 지날 것으로 보인다. 지진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의료장비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대지진 이후 수년간 계속돼온 불행들은 이번 지진이 가져올 불길한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는 “이번 지진이 여러 지역에서 다수의 인명 손실과 물적 피해를 일으켰다”며 “피해자를 돕기 위해 모든 정부 자원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아이티 상황을 보고받은 뒤 미국의 즉각적인 대응을 승인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당장의 지진 피해 대응을 넘어 아이티의 장기적인 재건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티는 2010년 대지진 당시 133억 달러에 이르는 후원금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지도층의 횡령과 부패, 지원금 남용 등으로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