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내각 각료 5명 야스쿠니 참배…日언론 “총리, 역사관은 있나” 비판

  • 뉴시스
  • 입력 2021년 8월 17일 11시 06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내각이 출범하고 첫 패전일을 맞아 각료 5명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 신사에 참배했다. 스가 총리는 참배를 보류하고 공물을 봉납했으나 추모사에서 ‘반성’ 언급은 피했다. 현지 언론은 스가 총리에게 역사관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17일 아사히 신문은 “각료 야스쿠니 참배, 총리에게 역사관은 있는가”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스가 정권 출범 후 지난 15일 첫 ‘종전의 날(패전일)’을 맞아 스가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다마구시료(玉串料)’라는 공물을 봉납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하지만 5명의 각료가 참배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에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 이노우에 신지(井上信治) 과학기술담당상이 참배했다. 지난 13일에는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경제재정·재생상,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이 참배했다.

특히 자위대를 지휘·감독하는 현직 방위상의 참배는 지난 2016년 이후 처음이었다.

신문은 “패전 76년, 총리 자신의 역사관도 또한 엄격하게 추궁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은 참배 후 “자국을 위해 존귀한 희생을 한 선인에게 존숭(尊崇·깊이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참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사히는 “그러나 군국주의의 정신적인 지주가 된 국가신도 중심적 시설에 각료들과 정치지도자가 참배하는 것은 유족과 일반인들이 희생자를 애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며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잊고 전쟁 역사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져도 어쩔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야스쿠니 신사에 2차 세계대전 전쟁을 지도하고 도쿄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 판결을 받은 14명이 합사됐다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도쿄재판을 수용, 국제사회로 복귀한 일본의 행보를 ‘부정’하는 길로 연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 관점에서 의문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스가 총리가 지난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한 연설은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연설을 거의 모방했을 뿐이다. 자신의 식견과 생각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 이래 역대 총리는 아시아 주변국에 대해 “깊은 반성”, “애도의 뜻”을 표명해왔으나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정권 아래 가해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스가) 총리도 올해 똑같이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아베 정권 계승을 내걸고 그 자리에 오른 (스가) 총리는 역사인식도 답습하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스가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역임할 당시 오키나와(沖?) 고난의 도정에 이해를 구하는 현지 지사에게 “나는 전후 태어났다. 역사를 꺼내 들어도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최근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서도 핵 폐기에 대해 피폭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분을 ‘깜빡’ 넘기고 연설했다. 아사히는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고 총리의 책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야아 한다”고 비판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근대 100여년 간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명의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던 한국인 2만여 명도 합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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