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아프간 대통령, ‘죽을때까지 싸우겠다’ 한 다음날 도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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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인터뷰서 통화 내용 공개… NYT “바이든 정부, 가니 너무 믿어”
가니, 자국민 탈출 방해 시도 의혹… NYT “6월 바이든과 워싱턴 회담서
가급적 비자 발급 말아 달라 요청 … 탈레반은 “용서할테니 돌아와도 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함락되던 당일(8월 15일) 외국으로 달아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사진)이 도피 전날까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미국 CBS뉴스는 가니 전 대통령에게 속은 블링컨 장관이 ‘혀를 내둘렀다’고 전했다. 아프간 점령 후 ‘피의 숙청’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은 가니 전 대통령을 향해 ‘용서할 테니 돌아와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블링컨 장관은 22일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니 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밝히며 “그는 14일에 나에게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니 전 대통령은 15일 헬기에 돈뭉치를 싣고 아프간을 떠났다. 뉴욕타임스(NYT)는 지금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오판에 오판이 이어진 결과로,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가니를 너무 믿었다”고 지적했다.

가니 전 대통령이 탈레반의 폭정을 피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자국민들에게 비자를 쉽게 내주지 말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는 6월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NYT에 따르면 그는 회담장에서 취재진이 나간 뒤 바이든 대통령에게 “통역사 등 (미국에 협조한) 현지인들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을 ‘보수적’으로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가능한 한 비자를 내주지 말라는 취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니 전 대통령이 카불 함락 닷새 전인 10일 국민들의 엑소더스 조짐에 놀라 여권 발급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20일 전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철군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며 “철군은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해 달라”는 요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바이든은 가니를 고집스럽고 거만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NYT는 보도했다. 실제 미국은 아프간 주둔 20년간 핵심 기지로 삼았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지난달 2일 밤 야반도주하듯 철수했다. 미군과 함께 근무했던 아프간 군인들은 다음 날 아침에야 미군들이 사라진 걸 알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아프간에 있으면 극심한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외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가니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오고 있다. 마수드 안다라비 전 아프간 재무장관은 23일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에 “대통령이 달아나던 날까지 그의 생명에 대한 위협은 없었다. 당일(15일) 오전엔 대통령비서실장과 회의도 했는데 위협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탈레반 군사지도자인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는 22일 “가니를 용서한다. 사면해 줄 테니 아프간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체류 중인 가니가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영국 가디언은 “가니의 성급한 도피가 아프간에 분노와 비통함을 남겼다. 대통령이 달아나는 것을 본 국민들은 쓰라린 슬픔과 고통에 잠겼다”고 22일 보도했다.

#블링컨#아프간 대통령#가니#바이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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