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우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 제한 등 우려가 있다며 수정을 권고하고 나섰다.
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리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내가 입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정보에 따르면, 이 법안 내용에 추가적인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와 언론 표현의 자유란 권리를 심각히 제한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칸 보고관이 입수한 정보란 지난달 24일 국내 비영리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OHCHR에 보낸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칸 보고관은 “내가 입수한 정보에선 한국 당국의 (언론중재법 개정)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 구축’에 있다. 그러나 수정 없이 새 법이 채택되면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심각히 우려한다”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9조가 정한 법률의 Δ적법성 Δ필요성 Δ비례성 등 요건에 따라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칸 보고관은 먼저 ‘법률의 적법성’ 요건과 관련해 “유엔인권이사회의 최근 보고서에선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법률은 범위·의미·효과가 국제법 요건에 맞게 명확하고 정확하며 공개적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국의 자의적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칸 보고관은 또 ‘법률의 필요성’ 측면에선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에 규정된 ‘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특칙’(고의 중과실 추정 조항)이 “매우 모호한 표현”으로 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민주사회에 필수적인 광범위한 표현, 예컨대 언론보도와 정부·정치지도자·기타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인기가 없는 소수 의견을 제한할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3월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칸이 지적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은 ‘법원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서 이 법 개정안의 주요쟁점 가운데 하나다.
칸 보고관은 ‘법률의 비례성’ 측면에서도 이 규정이 “완전히 불균형적”이라며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매체의 자기검열로 이어지거나 공익적 문제들에 관한 중요한 토론들을 억압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칸 보고관은 “국제인권법에 따라 (권리) 제한은 합법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도로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칸 보고관은 Δ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제인권법, 특히 ICCPR 제19조상의 3대 요건에 어떻게 부합하는지에 대한 공식 답변과 함께 Δ국제인권법 기준에 맞게 법 개정안을 수정해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0년 ICCPR에 가입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서한과 관련해 “언론중재법 개정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안인 만큼 관련 동향을 지켜보며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유엔 특별보고관의 서한의 답변할 의무는 없지만, 국제관례상 관계부처 간 협의 등을 거쳐 답변서를 보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초 8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날인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점쳐졌었으나, 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 등에 따라 본회의 상정일을 오는 27일로 미룬 상태다. 여야는 앞으로 각 당 의원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8인 협의체를 구성해 법 개정안 수정 여부 등을 논의해간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 대해 침묵해왔던 문재인 대통령도 8월 31일에서야 “언론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회적 소통과 열린 협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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