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 불발됐다. 지난 2월 이후 약 7개월만의 양국 정상이 ‘깜짝 통화’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제자리’였다.
지난 1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약 8개월이 지났지만 미·중 양국 정상을 두 차례 통화만 했을 뿐이다. 양국 고위급 외교 당국자 회담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방중 등 고위급 접촉도 있었지만 기존의 입장만 재확인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파아낸타임스(FT)는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0일 이뤄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양국 교착 상태 해소를 위해 대면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시 주석은 이를 거부하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덜 강경한 정책을 취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애초부터 양국이 인권과 무역, 경제, 영토 등 각 분야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성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영국과 일본 등 핵심 동맹국을 규합해 이른바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꼽고 있는 대만과 신장 위구르 등 영토·인권 문제를 내세우며 대중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국 기원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미국 책임론, 리투아니아 대만 사무소를 둘러싼 양국의 충돌 등 미·중 충돌점은 줄이기는커녕 점점 더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 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 주석은 최근 자국 내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등 내년 3선 연임을 앞두고 지배력 다지기에 나섰다.
시 주석으로서는 전세계적 관심사인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성과를 들고 오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국 전문가인 보니 글레이저 저먼마셜펀드 선임연구원은 FT에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 없이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수준에서 상호작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대미 정책은 여전히 ‘강경 대응’에 방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최근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친강을 신임 주미 대사에 임명했다.
미국의 보수잡지 ‘내셔널리뷰’에 따르면 친 대사는 지난달 말 비영리단체인 ‘미·중관계전국위원회(NCUSCR)’ 화상 회의에서 “이견을 해결할 수 없다면 닥쳐달라(please shut up)”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는 이날 행사에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제이콥 루 전 미 재무부 장관을 비롯해 저명한 관료, 학계, 재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며 친 대사의 ‘닥쳐 달라’는 비외교적인 발언은 앞으로 그가 취할 강경 노선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우려 역시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1월 미얀마를 방문한 뒤 600여일 동안 국내에 머물러 가장 오랜 기간 칩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FT는 미군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백악관은 시 주석의 대면 정상회담 거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우려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도 시 주석과 후속 교류의 일환으로 정상회담을 언급했을 뿐 즉각적인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오는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이라고 중국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G20 정상회담 즈음에 영상 통화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은 최근 G20 개최국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G20 로마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지할 것”이라고 하는 등 직접 참석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양국 정상이 약 7개월 만에 통화를 하는 등 일단 양국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만큼 향후 직접 혹은 다른 고위 당국자를 통한 접촉 가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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