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사진)은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한국을 언론 자유의 롤모델로 간주하는 나라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국제 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상이 위협받을 수 있으니 신중히 결정하라는 뜻이다. 또 이번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비롯해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칸 보고관은 24일 한국 언론들과 화상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내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국제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칸 보고관은 “한국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국제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다”면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있어서 계속 리더 역할을 수행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호소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담아 지난달 27일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낸 칸 보고관은 이날 회견에서도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국회의 신중한 검토를 촉구했다.
칸 보고관은 “국제법 어디에서도 단순히 정보가 허위라는 이유로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면서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제법의 어떤 근거 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 법안은 문구 자체가 모호하다”면서 “모호하게 문구가 구성되면 다양한 범주의 표현을 제한할 수 있게 되고,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가 금지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칸 보고관은 특히 손해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규정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나의 우려 사항은 허위 정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비례성 원칙에 어긋나는 과도한 손해배상을 부과한다는 것”이라며 “5배를 3배로 줄이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3배 역시 과도하게 높은 것이고 언론사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칸 보고관은 “방송·신문사의 편집국은 혹시라도 어떤 뉴스라도 허위라고 밝혀지면 굉장히 많은 배상액을 물어내야 한다는 걸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며 “배상액 규모가 해당 매체의 매출액과 연계돼 있어서 주류 언론사나 영향력 높은 매체들은 처벌의 수위가 더 높게 설정되고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봤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은 이미 민사상으로 허위정보를 언론이 보도하면 기존에 있는 법규를 통해 고소를 할 수 있는데도, 이 개정안은 불필요하게 징벌적 배상제도를 포함했다”면서 “언론 보도에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되면 이는 다른 산업들에 비해 불공정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언론이 뉴스를 보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굉장히 꺾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칸 보고관은 국회가 개정안의 수정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폐기하지 않고) 수정만 한다면 가장 심각한 요소에 대한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징벌적 배상 조항을 없애고 명예훼손에 대한 정의를 좁게(모호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칸 보고관은 “여기저기 단어 한 두 개씩, 주변부만 수정하면 안 된다. 대충 서둘러 고치려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협의해야 한다”면서 “그러도 나서 국회가 수정된 안으로 갈지, 아예 폐기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는 언론의 자유, 향후 한국의 민주적 절차도 위축시킬 수 있는 심각한 이슈이기 때문”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칸 보고관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민주적 절차들이 수호되고 내년 대선 등 선거도 원활히 진행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고 필요하면 국가 방문에 대해서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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