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여름 10년 만에 극심한 전력난을 겪었다. 광둥성을 비롯한 주요 산업단지에선 전력 배급제가 시행되고,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선 피크타임에 전력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 중국 전체 무역의 25%를 담당하는 광둥성도 선전 등 107개 도시에 전력 공급 제한 조치를 내렸다.
전력난의 주요 원인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중국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고 경기 회복이 빨라지면서 산업용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게다가 가뭄 등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 현상으로 냉방기구 사용도 증가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다. 석탄이 부족해 화력발전소를 제대로 가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라는 오명을 들었음에도 화력발전을 전력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간주해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유엔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중국 정부의 ‘에너지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석탄과 청정에너지(천연가스, 수력, 원자력, 풍력, 태양열 등)가 에너지 소비 총량에서 차지한 비율은 각각 57.7%, 23.4%였다.
호주 정부의 反中정책에 대한 보복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석탄 소비량은 2017년 27억6200만t, 2018년 27억8400만t, 2019년 28억1000만t, 2020년 28억1169만t으로 4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유럽연합(EU)과 미국은 10.1GW와 11.3GW 규모의 석탄 화력발전소를 각각 감축했지만, 중국은 38.4GW 규모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중국은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석탄을 자급자족하지 못해 부족한 석탄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석탄 수입량 또한 2019년 3억t, 2020년 3억400만t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전체 수입 발전용 석탄에서 호주산이 57%를 차지했는데,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 호주에 대해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석탄 대란’이 벌어지게 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5월 호주산 보리에 80.5%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호주 4대 도축업체가 가공한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했다. 또 호주산 면화·목재·랍스터·구리 등에 수입 제한과 금지, 통관 불허 조치를 내렸으며, 와인에 최대 200%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호주산 석탄 수입금지 조치는 지난해 11월 내렸는데, 중국 정부가 이런 일련의 보복 조치를 내린 것은 호주 정부의 반중정책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사업 참여 배제 △코로나19 기원과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 조사 요구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의 인권 문제 및 홍콩 민주주의 탄압 비판 △대만과 남중국해 개입 △빅토리아 주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취소 조치 등 반중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에 일종의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다양한 제재 조치를 내렸고, 그중 호주의 무릎을 꿇리기 위해 꺼내 든 회심의 카드가 석탄 수입금지였다. 호주가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 가운데 석탄은 철광석과 천연가스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전 세계 석탄 수출 2위 국가로, 중국에 매년 140억 호주달러(약 12조26억 원) 상당의 석탄을 수출했다. 호주가 석탄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일본으로 전체의 27%, 그다음이 중국으로 21%, 인도가 16%를 차지한다. 석탄산업에 종사하는 호주 국민은 5만여 명에 달한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할 경우 호주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호주는 중국의 석탄 수입금지 조치 이후 수출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일부 탄광이 문을 닫았고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하지만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버티기를 해왔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중국이 오히려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할 석탄이 부족해지면서 전력 공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7월까지 중국의 총 전력 소비는 지난해 동기 대비 15.6%나 증가했다. 중국 화력발전소들은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석탄 확보에 동분서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석탄 가격마저 급등했다. 발전용 석탄 가격은 7월 말 기준 t당 1009위안(약 18만 원)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9월 초 기준으로 산시성 일부에서는 t당 4000위안(약 72만70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호주의 중국 무역 의존도 파괴적이지 않아”
중국 정부는 석탄 수입 다변화와 자체 생산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콜롬비아 등에서 석탄을 들여오긴 하나 거리가 멀어 수송비용이 비싸고 품질도 좋지 않아 수입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또 중국 내 최대 석탄 생산지인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연간 2억5000만t의 석탄을 추가 생산할 계획이지만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호주 정부는 중국의 석탄 대란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조시 프라이덴버그 호주 재무장관은 “중국이 원하지 않는 석탄을 다른 국가들에 성공적으로 수출했다”며 “인도, 한국, 대만 등 다른 시장 구매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프라이덴버그 장관은 “지난 1년간 호주가 중국에 수출한 석탄은 3000만t 감소했지만 전체 석탄 수출량은 2800만t 늘었다”면서 “중국의 제재 조치에 따른 호주의 경제적 피해는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호주 시드니기술대 호주·중국관계연구소(ACRI)는 중국의 수입금지 조치 효과를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서 와인과 일부 목재 수출에서만 큰 피해가 나타났을 뿐 석탄, 구리, 면화, 목재 대부분과 쇠고기 등 다른 제품은 수출 대체지를 확보함으로써 피해를 줄였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제재 조치에 따른 호주 수출업자들의 손실이 전체 수출의 10% 미만이었다”며 “이는 호주의 중국 무역 의존도가 일부의 예측처럼 파괴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구매력을 이용해 호주 때리기에 나섰지만 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석탄 대란’으로 피해만 입고 있는 셈이다.
호주 철광석 수입금지하면 핵심 산업에 타격
또한 중국 정부는 호주의 최대 수출품인 철광석에 대해선 수입금지 조치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호주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호주를 대체할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전체 철광석 수입량의 60%를 넘어서는 호주산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면 국가 핵심 산업인 철강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9월 5일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중국 정부는 세계 최대 보크사이트 생산국인 호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 원료로,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기니의 보크사이트 광산을 개발하는 데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 알루미늄은 중국 자동차, 항공기 등 주요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필수 소재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은 지난해 기니로부터 알루미늄 원료인 보크사이트 5270만t을 수입했다. 그런데 기니에서 군부 쿠데타에 따른 정정 불안이 증폭될 경우 중국의 보크사이트 수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국 철강 전문 조사기관 마이스틸(我的鐵鋼)의 장위 애널리스트는 “기니 군부의 쿠데타가 보크사이트 공급망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니 군부는 정부를 해산한 뒤 과도 기간을 관장할 거국 정부를 구성할 방침이다. 알파 콩데 대통령은 2010년 최초 민주선거에서 당선했지만, 지난해 3선 연임에 성공해 철권통치를 해왔다. 이에 맞서 야당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저항했다. 기니 군부는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내정 불간섭’이라는 원칙을 깨고 기니 군부의 쿠데타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니 군부의 쿠데타로 알루미늄 가격은 1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급등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정부는 호주로부터 보크사이트 수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경제 보복을 통해 다른 국가들을 겁박해온 중국 정부의 전략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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