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게 제조·재고·주문·판매·고객사 관련 정보를 내달 8일까지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요청함에 따라 반도체 업체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날 “입장이 없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는 “검토중”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이들 업체가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는 고객사 정보를 포함한 민감한 ‘영업 기밀’이 노출될 수 있어서다. 어떤 업체에 얼마의 가격에 제품을 팔고, 수량은 어느 정도고, 향후 증설 계획 같은 정보가 노출되면 판매와 영업전략이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 고객사와의 법적 문제까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1위 파운드리(조립생산) 업체인 TSMC가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현지 언론인 타이베이타임스는 지난 1일 “쿵민신 대만 NDC(대만 국가발전협의회) 장관이 타이베이 의원들에게 TSMC가 미국 상무부에게 고객 관련 기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쿵민신 장관은 TSMC 이사회의 이사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이 안돼 공급망을 알고 싶어 하는데, 이것이 각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라며 “TSMC의 이런 반응은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TSMC가 정보공개 거절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지만 업계는 반도체 기업들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내달 8일 전에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반도체를 전략물자화 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기업이 정면으로 거부하기는 힘들 거라는 이유에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미국에서 요구했으니 정보를 안 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제조에 미국 기술이 사용되고 있고, 미국의 공급망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압박이라서 한국 업체들은 정보 제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TSMC의 거절 입장에 대해 주 이사는 “지금 거절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결국 TSMC도 적당한 선에서 정보를 줄 것으로 본다”며 “다만 특정 기업의 이름을 지우거나 해서 제출하는 형태로 미국 정부와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11월 8일까지 아직 한 달 이상 남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떤 방식으로 정보 제출이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영업 비밀 노출시 고객사와의 법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가 진행된 후 반도체 업체들의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정부의 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우리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적극 검토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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