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기후위기를 ‘인류가 직면한 최대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각국 정부가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11일 촉구했다. 같은 날 기후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는 지구 면적의 80% 이상이 이미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중이고, 세계 인구의 85% 이상은 각종 기상이변을 경험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말 지구 생태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지구환경 및 기후변화 메르카토르연구소의 막스 칼라간 연구원과 연구팀은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기계 학습)을 이용해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연구자료, 간행물 등 10만2160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농작물 수확 감소, 홍수, 무더위, 허리케인, 해수면 상승 등 기상이변의 원인은 ‘인간의 활동’이 배출한 온실가스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현재의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금세기 말 지구의 기온은 지금보다 섭씨 2.7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이는 급격한 식량과 식수 부족, 치명적인 기상재해를 불러와 결국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각국이 관심을 넘어 실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4500만 명을 대표하는 450개 단체는 10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기온 상승은 호흡곤란, 정신 이상, 해충 발생, 질병 확산 등을 유발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보건 위협”이라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비극적이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HO도 11일 발표한 ‘기후변화와 보건에 관한 특별보고서’에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10개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올해 세계는 유례없는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지구 한편에서는 ‘물 폭탄’이 쏟아졌고, 다른 편에는 고통스러운 무더위가 이어졌다.
11일 워싱턴포스트(WP)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산하 국립환경정보센터(NCEI)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에서는 18건의 기후재난으로 388명이 숨졌고 최소 1048억 달러(약 125조655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2월 텍사스 등 미국 남부는 폭설과 혹한으로 전기가 끊어지고 20명 이상이 동사했다. 7월 미 서부에서는 고온의 날씨가 이어지며 가뭄과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 뉴저지 등에서는 133년 만의 대홍수로 도시가 침수돼 41명 이상이 숨졌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7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는 40년 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100만 명 이상이 아사(餓死) 위기에 처했다. 같은 달 서유럽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독일, 벨기에 등에서 160명이 넘게 숨졌다.
미국에서는 환경운동가 등 수백 명이 11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 모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기후위기를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하라”고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벌였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내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각국이 메탄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메탄서약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많이 퍼진 온실가스다. 영국 런던 임피리얼 칼리지 그랜섬연구소의 프리데리케 오토 선임연구원은 “극단적인 기후 현상을 세계 거의 모든 이들이 경험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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