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실 정도로 독창적인 한국 콘텐츠는 세계를 매혹시켰다…하지만 해외 글로벌 플랫폼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단순 하청업체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 연이은 한국 콘텐츠의 흥행으로 전 세계 한류열풍이 부는 가운데 세계 유수 매체들이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를 삼킨 ‘기현상’을 분석하며 내놓는 진단이다. 한류가 하루아침 생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인기를 끌 것이나, 자체 플랫폼을 강화해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세계를 매혹시킨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흥행 가도를 달리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그 분량만 자그마치 약 15000자에 달한다.
이들은 먼저 한류열풍의 기원에 주목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대중문화는 예술영화를 통해 처음 얼굴을 알렸고, 1987년 한국의 민주화를 계기로 창조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서구권 영향을 받아 1990년대 첫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부상은 한국 정부의 검열에 도전하고 정적이던 기존 가요계를 변화시키는 등 새로운 세대가 열광할만 한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탄생시켰다.
이어 1997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오히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기회가 됐다. 정책입안자들은 금융위기로 실물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보고, 디지털 인프라와 콘텐츠 등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을 위한 막대한 투자가 감행됐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 진출하는 등 ‘한류’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곧 정체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류열풍은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가수 ‘비’는 아시아 전역에서 1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지만,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했으면서도 미국 진출엔 결국 성공하지 못햇다.
한류는 디지털 발전과 더불어 또다시 발판의 도약을 마련했다.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 한국의 케이팝 팬들은 두터운 팬층을 이루고 서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등 독특한 팬덤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던 이들이 소셜미디어 등장에 힘입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마침내 해외 진출의 장벽까지 무너뜨렸다.
한국만의 문화가 디지털 기술의 부상과 맞물려 세계를 휩쓸 강력한 힘을 얻은 것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등 전 세계를 강타한 한류열풍이 그 결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콘텐츠의 강력한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넷플릭스나 애플뮤직 등 해외 글로벌 플랫폼 등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하청업체 수준에 머물어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투자하는 한 관계자는 “오징어 게임은 한국 콘텐츠의 품질을 세계에 보여줬지만 글로벌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한국 콘텐츠 회사들이 당면한 과제는 하청업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콘텐츠 생태계를 누가 통제하느냐다”라며 “중요한 건 이제 생태계를 통제하는 이들이 콘텐츠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행히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이들은 발빠르게 메타버스로 진출하는 등 자체 플랫폼 강화를 위한 중장기적 전략을 이미 마련하고 있다. 시가 총액이 34억 달러(약4조원)가 넘는 한국 최대 영화 및 TV 제작사 CJ ENM의 서장호 수석 부사장은 “당분간은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만, 장기적으론 우리만의 플랫폼을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케이팝과 한국영화 업계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게임 업계는 ‘메타버스’라고 알려진 가상세계를 만드는 데 전문화된 한국 및 서양 콘텐츠 제작자들과 회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이에 정부도 나섰다. 지난 5월 정부는 200개 이상의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메타버스 동맹’을 출범했고, 국가의 다음 디지털 전환을 위한 2022년 예산으로 80억 달러를 배정했다.
권미경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나아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미래의 플랫폼 제공자가 되길 원한다”며 “그들은 궁극적으로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가치 사슬에서 상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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