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순방 잦은 시진핑, 22개월째 구중궁궐 속에… 왜[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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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시진핑, 코로나 책임론 쏟아지자 외교적 피신 선택”
코로나 反中정서 피하려고?
반대파 쿠데타 걱정돼서?
아바타 내세워 국제외교?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비행기에서 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펜데믹 전까지 활발하게 해외 활동을 해왔던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미얀마 방문을 마지막으로 22개월째 중국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즘(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세진 반중 정서 등이 이유로 꼽힌다. 사진출처 AP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비행기에서 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펜데믹 전까지 활발하게 해외 활동을 해왔던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미얀마 방문을 마지막으로 22개월째 중국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즘(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세진 반중 정서 등이 이유로 꼽힌다. 사진출처 AP
1∼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가, 지난달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단절됐던 주요국의 다자외교가 본격적으로 재개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은 두 정상회의에 모두 참석했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이틀간 미얀마를 방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22개월째 중국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2012년 12월 집권한 그가 42회의 순방을 통해 69개국을 방문하는 등 그간 활발히 해외를 누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그는 2013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유명 휴양지 랜초미라지 목장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와이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산책했다. 2015년 영국 런던 인근 술집에서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와 역시 노타이 차림으로 생맥주를 마시는 등 서방에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런 그가 두문불출하는 이유로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반중 정서 △쿠데타 등 국내 정치 격변 우려 △전력난, 부동산 업계 부실 등 민생 문제 △내년 말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3연임을 위한 여론 조성 작업의 필요성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런 행보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 8회 방문 등 과거 외유 즐겨
시 주석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5.25회 해외를 찾았다. 2015년 8회로 가장 많았고 2014년과 2019년(각 7회)에도 열심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 주석은 코로나19 이전 연평균 34일을 해외에 머물렀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2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23일)보다 길다.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는 우방 러시아다. 2013년 3월 첫 방문을 시작으로 2019년 6월까지 총 8차례 찾았다. 그 다음이 미국(4회)이다.

2013년 처음 미국을 찾은 그는 2년 후인 2015년에는 국빈 자격으로 워싱턴, 뉴욕 맨해튼의 유엔본부,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 등을 누볐다. 당시 시애틀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 미 정보기술(IT) 업체 거물과도 회동했다. 그는 2016년 다시 미국을 찾아 오바마 대통령을, 다음 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시 주석은 프랑스 인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각각 세 차례 방문했다. 독일 브라질 스페인 등은 2회, 한국 일본 북한 등은 1번 찾았다.

시 주석의 마지막 해외 방문과 정상 외교는 모두 지난해 초 이뤄졌다. 지난해 1월 미얀마를 방문해 윈 민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한 달 후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통화했다. 두 나라 모두 중국과 국경을 맞댄 인접국이고 국제 외교무대의 변방으로 평가받고 있어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실질적인 해외 순방의 마지막은 2019년이란 의미다.

2013년 6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유명 휴양지인 랜초미라지 목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양복 상의와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만 입은 채 산책하고 있다. 시 주석은 당시 방문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4차례 미국을 찾았다. 시진 출처 트위터
2013년 6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유명 휴양지인 랜초미라지 목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양복 상의와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만 입은 채 산책하고 있다. 시 주석은 당시 방문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4차례 미국을 찾았다. 시진 출처 트위터


거센 반중 정서로 ‘벙커 심리’ 발동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두문불출하는 이유로 서방의 중국 경계가 최고조에 이르러 나가봤자 별 이득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기업 화웨이가 서방의 최첨단 정보를 중국 공산당으로 빼돌렸다는 의혹,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및 홍콩 민주화시위 탄압, 대만 침공 위협 등으로 서방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상당히 훼손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런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서방은 2019년 말∼지난해 초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중국이 자국 이미지 하락을 이유로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를 거부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사실상 방치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미국, 호주 등이 친중 성향의 세계보건기구(WHO)가 아닌 독립적인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했음에도 줄곧 거부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 와중에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왔을 수 있다”고 주장해 서방의 분노와 불신을 키웠다.

한때 연평균 8%대 성장을 구가하던 중국 경제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되면서 예전처럼 ‘차이나 머니’를 과시할 상황도 못 된다. 추락한 대외 이미지, 얇아진 지갑으로 과거처럼 환영 일색의 대우를 기대할 수 없고 대만, 홍콩, 신장위구르 등에 관한 불편한 질문을 피할 길도 없으니 차라리 중국에 머무르는 것을 택했다는 의미다. NYT는 이를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머리를 내밀지 않고 깊게 파놓은 모래 구덩이(벙커)에서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벙커 심리(Bunker Mentality)’라고 분석했다.

반대파의 정권 전복 우려
자신이 중국을 비운 동안 발생할지 모르는 국내 격변 상황 또한 그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2012년 2월 당시 국가부주석이었던 그는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같은 해 말 집권을 앞뒀지만 당시 권력 기반은 공고하지 않았다. 특히 차기 주석직을 두고 경쟁했던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의 세력이 상당했다. 당시 보시라이가 시진핑이 중국을 비운 틈을 타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링지화(令計劃) 중앙판공청 주임, 쉬차이허우(徐才厚) 군사위 부주석 등과 함께 시 주석의 집권을 막으려는 쿠데타를 시도하려 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2013년 홍콩의 친중매체 첸사오(前哨)는 2012년 시진핑의 방미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현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쿠데타 음모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실제 시진핑의 방미 1주일 전 한때 보시라이의 최측근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 겸 부시장이 보시라이와의 갈등으로 청두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으로 달려가 망명을 요청했다. 이때 왕리쥔이 쿠데타 음모를 미국에 알렸고 당시 부통령 자격으로 부주석인 시진핑의 접대를 맡았던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다시 이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이런 정권 전복 우려는 내년 말 3연임을 시도하는 그에게 해외 순방을 꺼리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의 장기 집권에 반발하는 세력 또한 적지 않다. 중국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집단 지도 체제를 택했다. 최고 권력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9인 체제로 구성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집권 후 9인 체제가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수십 년간 정착된 집단 지도 체제를 사실상 ‘1인 통치’로 바꾼 그에 대한 불만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를 감안할 때 계속 중국에 머물면서 반대파를 꾸준히 견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2015년 10월 영국 런던 인근 버킹엄셔의 한 술집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영국 대표 요리 ‘피시앤드칩스’와 맥주를 먹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출처 페이스북
2015년 10월 영국 런던 인근 버킹엄셔의 한 술집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영국 대표 요리 ‘피시앤드칩스’와 맥주를 먹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출처 페이스북
민생 문제 산적

전력난, 부동산 업계 부실, 양극화 심화 등 민생 문제도 심각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로 도는 지도자를 반길 국민은 없다. 당연히 장기 집권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경제 수장인 리커창(李克强) 총리 또한 1일 “경제가 여러 이유로 새로운 하방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우선 호주와의 외교 갈등으로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인 호주로부터의 석탄 공급이 끊긴 상황에서 최근 자국 내 석탄 생산지인 산시성 등에 쏟아진 폭우로 자체 공급까지 여의치 않자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북동부 랴오닝성 등에서는 전기가 끊겨 일부 주민이 촛불에 의존해 생활하는 등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광둥성 등 남동부 제조업 지대의 공장 가동 또한 상당 부분 멈췄다.

전력난 또한 시 주석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그는 2060년까지 탄소 ‘제로(0)’를 이루겠다며 석탄업 구조조정, 화력발전 축소,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장려했다. 특히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내외에 청정에너지 국가의 면모를 선보이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이 친환경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외 과시를 위해 다소 섣부른 목표를 도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공장 가동률이 올라 전력 수요는 급증했는데 전 세계적인 석탄 가격 상승으로 화력발전소는 이에 상응하는 전력을 공급할 수 없었던 것이 현 전력난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장담할 수 없다. 이번 북동부 정전 사태 또한 올여름 이곳의 바람 세기가 예전만 못했던 것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파산설이 끊이지 않는 부동산 회사 헝다,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대형 IT 업체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 또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연임 확정까지 두문불출 가능성

이를 감안할 때 내년 말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이 해외로 나갈 확률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안문제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코로나19, 권위주의 통치 등으로 시 주석은 역대 중국 지도자 중 대외 이미지가 가장 안 좋은 지도자 중 하나가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외로 나가면 비판이 불가피한데 아무리 당국이 언론을 통제한다 해도 중국에 퍼지는 것을 완전히 막는 데 한계가 있어 자신의 구중궁궐로만 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센터장은 G20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더러운 중국산 철강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고 한 점을 거론하며 시 주석이 만약 G20에 참석해 직접 이런 말을 들었다면 엄청난 이미지 타격이 있었을 것으로 진단했다. 중국에서 ‘황제’나 다름없는 그가 해외에서 깨지는 모습을 보면 여론이 동요할 수 있고 장기 집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과거 시 주석의 해외 방문이 주로 경제영토 확장사업 ‘일대일로’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는데 현재 코로나19, 전 세계 물류대란 등으로 일대일로가 여의치 않은 것과도 연관이 깊다고 분석했다. 그는 “설사 중국이 일대일로를 강화한다 해도 과거처럼 많은 나라가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중국 또한 얻을 것이 많지 않으며,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발원지로 의심받는 중국의 지도자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해외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했다.

이런 행보는 미중 갈등 속에서 ‘동맹’을 앞세워 중국과 맞서는 미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본인이 직접 나서도 동맹 규합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리 총리 등 대리인을 내세운 ‘아바타 외교’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헬레나 레가르다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 수석분석가는 NYT에 “각국 정상의 대면 회담은 외교 장애물을 극복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라며 “시 주석이 해외를 나가지 않고 대면 정상외교를 피하는 것은 이런 기회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라고 평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중국#시진핑#두문분출#외교적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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