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 어쩌라고…” 슈퍼 배출자의 COP26 참석 행렬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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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 꼭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보호 시위대입니다. 그런데 시위대가 향한 곳은 총회장 주변이 아니었습니다. 시위를 벌인 곳은 글래스고 도심에서 떨어진 판버러 공항이었습니다.

환경보호 단체 회원들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맞춰 개인용 비행기들이 속속 착륙하는 판버러공항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햄프셔 라이브
환경보호 단체 회원들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맞춰 개인용 비행기들이 속속 착륙하는 판버러공항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햄프셔 라이브


요즘 시위대는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 환경보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목표 설정을 잘합니다. 글로벌 환경단체 ‘멸종반란’ 시위대가 이번 COP26 기간 중 목표로 정한 것은 ‘슈퍼 배출자’였습니다.

개인용 비행기를 이용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주요 행사에 참석하는 정 재계 지도자와 셀러브리티들을 ‘슈퍼 리치’에 빗대 ‘슈퍼 배출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개인용 비행기가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슈퍼 리치들의 애마(愛馬) 격인 개인용 비행기는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상업용 민간 항공기에 비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흔히 개인용 비행기 앞에 ‘연료를 마구 먹어대는(gas-guzzling)’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만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시위대는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와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판버러 공항을 비롯해 런던 히드로, 버밍햄, 브리스틀 등 영국 내 7개의 공항에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판버러가 특히 주목받은 것은 개인기 전용 공항인데다 COP26 회의장과 가까워 많은 수의 비행기가 이착륙했기 때문입니다.

COP26 참석을 위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이용한 개인용 비행기(왼쪽)가 공항에 착륙한 모습. 폭스뉴스
COP26 참석을 위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이용한 개인용 비행기(왼쪽)가 공항에 착륙한 모습. 폭스뉴스


COP26 조직위원회는 총회가 열리기 전 ‘개인용 비행기 가이드(Private Jet Guide)’를 참가국에 발송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오는 VIP는 어느 공항으로 오면 편하다”는 내용입니다. BBC방송에 따르면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이번 행사에는 유엔 기후총회 역사상 가장 많은 402대의 개인용 비행기가 이착륙했습니다.

상업용 항공기에 비해 탑승 인원이 작고 엔진 출력이 낮은 개인용 비행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타고 온 ‘에어포스 원’처럼 정부 수반의 업무용 비행기로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재력 있는 개인 자격의 소유자도 많습니다. 이번 총회에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온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올 초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기후특사로 임명된 그는 개인용 비행기를 즐겨 이용합니다. 케리 특사는 미 상원의원 시절 재산 보유액 1위였습니다. 2019년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기후리더십상인 ‘북극권 어워드(Arctic Circle Award)’를 받을 때도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오늘 미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0)로 줄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중국이 줄인다고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이 문제는 글로벌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합니다.”

당시 케리 특사의 수상 소감입니다. 상업용 민간 항공기를 이용하면 될 것을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와 기후변화 문제를 못 사는 나라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런 비판을 받을 때마다 케리 특사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나에게는 시간이 생명이다. 주요 행사 시간에 맞춰 도착해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려면 (개인용)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올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기후특사로 임명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왼쪽). 데일리메일
올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기후특사로 임명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왼쪽). 데일리메일


하지만 비판적인 사람들은 “지도급 인사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은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 용도”라고 주장합니다. 일반인은 자동차 사용 등으로 연평균 4.6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환경보호 단체들의 계산에 따르면 케리 특사의 경우 연 배출량이 116톤에 이릅니다.

미 언론이 보도한 연방항공청(FAA) 비행 기록에 따르면 케리 특사는 올해 3월 타운하우스가 있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아이다호 별장을 오가는 데 개인용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같은 달 매사추세츠 주 내 뉴베드퍼드에서 마서스비니어드까지(26일), 마서스비니어드에서 보스턴까지(28일) 단거리 구간에도 개인용 비행기가 동원됐습니다.

비행기의 연료 소비는 비행 거리나 승객 수보다 이착륙에 더 좌우됩니다. 전문가들은 “몇 십 명 정도 탑승하는 개인용 비행기의 환경 오염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수백 명의 승객이 밀착된 상업용 민간 항공기에 비해 1인당 연료 소모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2019년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이는 요트 ‘말리지아2호’를 타고 영국에서 뉴욕까지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한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뉴욕타임스
2019년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이는 요트 ‘말리지아2호’를 타고 영국에서 뉴욕까지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한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뉴욕타임스


환경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슈퍼 배출자들이 개인용 비행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편리성과 함께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대여 회사 ‘에어차터서비스’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4600여대의 개인용 비행기가 있습니다. 2019년 한 해에만 690대의 개인용 비행기가 구매됐습니다.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향후 10년간 7600대의 새로운 개인용 비행기 시장이 창출될 전망입니다.

개인용 비행기의 주 수요자는 슈퍼 리치가 25%, 비행기 대여 회사가 25%이고, 나머지 50%는 다국적 기업과 정부 기관들입니다.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COP26 총회에 개인용 비행기로 나타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는 시가 6500만 달러(770억원)의 10인승 ‘걸프스트림 G650ER’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개인용 비행기를 “길티 플레져(죄책감이 드는 즐거움)”라고 고백했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가 소유한 19인승 ‘봄바르디에 BD-700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4000만 달러(474억원) 정도 나갑니다.

2019년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친환경 요트를 타고 2주간에 걸친 대서양 횡단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툰베리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바쁜 지도자급 인사들이 배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강조하는 유명 인사들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환경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확실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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