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물가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경제대국에서 기록적인 물가상승률이 나오는 것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물가가 치솟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 압박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곳곳 치솟는 물가…미·중 상승률 ‘최고치’·터키 20% ↑
14일 외신들에 따르면 전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최근 물가와 관련 잇달아 기록적인 수치가 발표됐다.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 10일 발표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6.2%로, 1990년 12월 이후 처음 상승률이 6%를 넘어섰다.
중국은 10월 생산자 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13.5% 상승해 26년 만에 사상 최대폭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0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1% 상승해 13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6년 만의 최고 수준인 8.1%로 집계됐고, 브라질은 10%대, 멕시코는 6%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백신으로 경제 활동이 재개되며 소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인건비 상승 등이 겹치며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통받는 서민들, 개도국 더 심각…“울고 싶다”
식료품과 같은 필수재 가격 급등은 서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신들도 잇달아 물가 급등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세계 각국 서민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영국 웨스트 런던 지역에 있는 무료 급식소 푸드뱅크 ‘아빠의 집’은 지난 9월 중순부터 방문자가 급증했다. 영국에서 식품, 에너지 비용이 치솟자 기존에는 찾지 않던 직장인들도 도움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샤론 핸더슨(69) 부부는 식료품 쇼핑에 드는 비용이 기존 200달러 정도에서 코로나19 이후 300달러로 올랐다. 이에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유튜브를 통해 요리를 배우고 카페를 방문하는 빈도를 줄였다.
노스웨스턴 대학 정책연구소의 다이앤 위트모어 샨젠바흐 소장은 “수입의 더 많은 부분을 필수품 소비에 써야 하는 가정들은 필수품 가격이 오를 때 더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선 파장이 더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라질 상파울루의 빈민가에 사는 실리아 마투스(41)는 고기 등 식품 가격이 30%나 올라 4명의 자녀를 충분히 먹일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때로는 울고 싶다. 요리하기 위해 가스를 사면 음식을 살 수 없고, 음식을 사면 비누를 살 돈이 없다”고 한탄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0월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각국 정부와 구호단체들은 식량 가격 급등이 코로나19 팬데믹의 다른 경제적 여파로 이미 어려움을 겪는 빈곤층의 기아·영양실조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위드코로나에 인플레 심화 우려…“공급망 위기 지속”
물가 급등세에 각국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백악관은 물가 상승률이 31년만에 치솟자 성명을 내고 “물가 상승세를 뒤집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물가를 잡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물가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 소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단기간에 공급망 대란이 해소되기 힘들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미 매체 복스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부터 하역해 선반으로 보내야 할 항구까지 모든 단계에서 공급망이 붕괴됐다”며 제한된 상품 공급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공급망의 긴장과 인플레이션을 줄일 수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최근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인해 공급망 위기가 수개월 지속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연말 쇼핑 시즌이 돌아오면서 공급망 대란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엄청난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물가 상승은 지속될 것”이라며 미 고용 시장이 부활하면 소비가 늘어나게 되고, 그러면 공급망 병목 현상도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글로벌 상품 및 파생상품전략 책임자 프란치스코 블랑슈는 국제선 항공권 수요가 반등하는 등 석유 수요가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유가가 내년 배럴당 12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같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 속도를 올리고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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