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최근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름값 폭리’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정유회사들이 불법 행위를 통해 유가를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닌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석유·가스 회사들의 반(反)소비자 행위에 대한 증거가 쌓이고 있다”며 이 같이 지시했다. FTC는 기업들의 독과점 등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는 연방기관으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칸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석유·가스 회사들의 비용은 줄어들고 있지만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높게 유지되고 있다”면서 “FTC는 기름 가격 상승에 불법행위가 있는지 조사할 권한이 있다. 지금 당장 그것을 하리라 믿는다”고 주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미국의 석유·가스 대기업들은 에너지 가격이 높은 것을 이용해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이에 FTC 대변인도 언론에 “FTC는 이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1달러로 1년 전에 비해 1.29달러나 올랐다. 기름값 상승은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자동차 이용이 잦은 미국인들에게는 유독 민감도가 크다. 최근 물가 급등에 따른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국정 동력을 살리기 위해 물가 추세를 어떻게든 되돌려놓는 것이 절실하다.
기름값이 민심에 끼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만큼 관련 업계에 대한 조사는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뤄져 왔다. 그러나 연방정부가 기업들을 조사하면서 실제로 가격 폭리나 시장 조작 혐의를 밝혀내는 데 성공한 적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정책 자문관을 지낸 밥 맥널리는 WSJ에 “FTC에 바가지 요금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것은 ‘공구 키트’ 안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구”라며 “이는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이어져 왔다”고 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기관과 공권력을 동원해 ‘물가 잡기’에 나서는 것은 정유사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치적인 ‘쇼’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해당 기업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 이익단체인 미국석유협회(API)는 성명을 내고 “(FTC의 조사는) 기본적인 시장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며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경솔한 정부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가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주요 석유 소비국에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로이터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과 국제 유가 상승으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거세진 가운데 방출 요청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이 증산 요청을 거부한 데 따른 불만도 반영됐다.
미국의 요청을 받은 국가들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국 관계자는 “해당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했고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미국이 유가 상승에 협력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것이 비축유 방출을 뜻하는 지는 불확실하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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