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에 재지명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68)은 최근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인플레이션 대응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차기 연준 의장에 파월 현 의장을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말 임기가 종료되는 파월 의장은 앞으로 4년 더 미국 중앙은행을 이끌게 됐다. 파월 의장과 함께 유력한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59)는 차기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됐다. 중앙은행 수장인 연준 의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며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물가와 고용을 관리해 경제를 안정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음식 주거 교통 등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가계에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파월 의장은 1980년대부터 변호사 신분으로 월가 주요 투자은행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차관을 지냈고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준 이사직에 오른 후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16대 연준 의장에 임명됐다. 경제학 박사들이 300명 이상 몰려 있는 연준 조직에서 경제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인사가 수장에 오른 것은 당시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제로금리와 자산 매입 프로그램 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통해 미국 경제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화정책에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파월 의장은 규제 완화를 선호하는 공화당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진보 및 보수 정부에서 두루 기용된 특유의 유연함 덕분에 상원 인준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브레이너드 이사가 연준의 ‘2인자’인 부의장에 지명된 것은 민주당 내 진보 세력의 목소리를 안배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연준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강한 금융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선명한 진보 색채를 보여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좌파들의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준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을 우려해 그의 의장 지명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이너드 이사의 남편은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다.
파월 의장의 재지명으로 미국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연준 의장을 연임시키는 관례도 이어가게 됐다. 이날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재지명 소식에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지수가 갑자기 떨어졌다. 특히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은 1.3% 하락했다.
금융투자 업계는 파월 의장의 연임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이미 테이퍼링 개시 선언을 통해 어느 정도 코로나19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한 만큼 연임 소식이 가격 변수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