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사적을 증강하면서 공격을 준비하는 듯한 러시아를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강력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들이 러시아의 공격이 있을 경우 언제 어떻게 반격할 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려 할 것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앤소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금지선(red line)”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이례적인 군사활동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만 답해 매우 절제된 입장을 보였다. 금지선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3일 국무부 대변인도 비슷한 질문에 대해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금지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금지선을 제시했다가 상대가 금지선을 넘었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9만명의 군대를 배치한 러시아의 움직임이 침공의 전조일 수 있다고 당국자들이 말하면서도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언제 어떻게 우크라이나 방어에 나설 것인 지에 대해 유독 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푸틴 대통령에 어느 정도까지 맞설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했었다. 대응하면 푸틴 대통령이 판돈을 올릴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바이든 부통령에게 거의 일임하다시피 했고 바이든 부통령이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독립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지가 분명치 않다. 고위 당국자들은 거듭 러시아와 안정되고 예측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이 목표임을 강조해왔다.
현재로선 바이든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침공에 나서지 않도록 외교적으로 설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두번째 대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런 대화 노력으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삼키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미 당국자들은 경제제재를 포함해 러시아의 도발을 징벌할 방안을 동맹국들과 논의중이기도 하다. 러시아 은행과 에너지회사들 및 러시아의 막대한 대외채무와 관련한 제재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특히 푸틴과 가까운 인사들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방안은 러시아 비밀 요원이 2018년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을 신경가스로 암살하려 시도했을 때 논의됐다가 유보됐었다.
러시아 특권층들이 비자 및 마스터 신용카드 사용을 금지하고 영국과 유럽 지역에 그들과 가족들의 여행을 제한하는 등 푸틴이 직접 관심을 가질 만한 제재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미국과 유럽 회사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미국이 군사원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올해 4억달러(약 4769억원) 규모의 군사원조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미 당국자들은 미국의 추가적인 군사지원이 상황을 악화시킬 것을 우려해 주저하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위원회 러시아 담당 국장이던 피오나 힐은 “유럽인들로선 미국과 유대를 강화하는 건 정말 큰 일이며 미국이 이 지역에서 견인차 역할을 해선 안된다”면서 푸틴의 목적 중 하나가 미국을 유럽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신안보센터의 안드레아 켄달-테일러 러시아 전문가는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끝까지 나서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라면서 특히 미국이 중국에 집중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를 밝힌 적이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접경 지역에서 도발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반군이 2014년 독립하는 것을 지원해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했었다.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지난 23일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통화해 “위기를 줄이고 작전적으로 충돌 위험을 낮추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군의 증강 상황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 당국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YO)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보 공유를 늘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돕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랜드연구소의 국무부 출신 새무얼 채럽 연구원은 “러시아는 7년 전에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에 미국이 82 공정사단을 파견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항상 대가가 작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미 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행동을 할 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위협이 크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가 대처하도록 하고 공격할 경우 큰 실수가 될 것임을 러시아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시간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든 러시아의 군대 증강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의 행동 의지를 시험하는 측면이 있다.
CIA 출신으로 미국신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인 마틴 래서는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은 NATO나 미국이 어쩌려는 지를 보기 위한 성격이 있다”면서 “푸틴은 이번 군사행동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차지하게 될 경우 서방이 얼마나 강력히 대응할 지를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