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 110개국 정상을 모아 주최하는 이틀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9일(현지 시간) 열렸다. 이에 반발해 온 비초청국 중국은 하루 전인 8일 100여 개국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대규모 인권포럼을 개최하며 맞불을 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화상으로 진행한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쇠퇴해 왔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민주주의를 새롭게 하는 것은 각 세대가 노력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로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글로벌 도전들에 의해 더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권위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워 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그들의 억압적 정책을 ‘더 효과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 초대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로 불린 존 루이스 전 미국 하원의원이 생전에 남긴 ‘민주주의는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각국 정상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 민주주의 증진과 이를 위한 글로벌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의 반발에도 미국이 보란 듯이 초청한 대만은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대표부 대표가 참석했다.
맞대응을 하고 나선 중국은 전날 베이징에서 개막한 ‘2021 남남(南南) 인권포럼’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축하 서한을 보내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인권 발전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9일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서한에서 “중국은 시대 조류에 따른 인권 발전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고 있다”며 “14억 인민이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남(南南)’은 지구 남반구에 개발도상국이 몰려 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서방국 중심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대다수 개도국이 초청됐음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중국은 미국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뒤 서방국들이 잇따라 동참하는 흐름을 막기 위해 자국을 겨냥한 인권 공세 차단에 부심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의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문과 관영매체의 선전 공세를 통해 “세계에는 미국식 민주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실정에 맞는 인민민주주의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본회의 첫 세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류가 민주주의와 함께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번영을 이루었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확고히 보장하되 모두를 위한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며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면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기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 겨울올림픽, 종전선언 등 중국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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