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압박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대열에 빨리 합류하라는 것인데 현 총리에 대한 압박이 아베 전 총리를 마치 ‘상왕’처럼 보이게 할 정도다.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단은 보내되 정부나 정치권 인사로 구성된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14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일본 위성TV 방송사 BS닛폰에 출연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촉발한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중국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는 일본이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며 “시간을 벌어서 어떤 이득이 있는가”라고 꾸짖었다. 이어 “일본은 결국 일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국제사회에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명시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외교적 보이콧을 종용하는 발언이었다.
앞서 미국은 지난 6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와 반인도적 범죄, 기타 인권 침해를 이유로 외교적 보이콧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어 뉴질랜드, 호주, 영국,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차례로 뒤따랐다.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국 중 아직까지 관망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일본 정도다.
아베 전 총리가 기시다 총리에게 외교적 보이콧을 종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9일 자신이 이끄는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95명) 모임에서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해 “위구르에서의 인권 상황에 대하여 정치적인 자세와 메시지를 낼 것이 우리나라(일본)에 요구되고 있다”며 “일본의 의사를 밝힐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명시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외교적 보이콧을 종용하는 발언이다.
일본 현지에선 아베 전 총리의 장외 압박에도 기시다 총리는 흔들리지 않고 사절단을 보낼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속한 파벌인 고치카이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왔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내각 내부에서 각료 파견은 곤란하다는 견해가 강해졌다며 일본의 사절단은 각료가 아닌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이끌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또한 일본 정부가 기시다 내각이 각료 파견을 연기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며 각료가 아닌 무로후시 고지 스포츠청 장관(차관급)의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와 이해관계가 일치, 협력해야 할 부분도 있으므로 언제까지 지금처럼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날 아베 총리는 앞으로 성취하고 싶은 일로 개헌을 꼽으면서 “비교적 리버럴한 자세를 갖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아졌다. 나도 측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추진해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드는 것을 꿈꾸는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