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투표 차이잉원 ‘역전승’…4개 안건 모두 부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9일 1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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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차이잉원. 뉴시스
대만 차이잉원. 뉴시스
대만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려 했던 국민투표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정부와 여당이 승리했다. 국민투표 직전까지 발표된 각 종 여론조사를 뒤집는 결과여서 차이 총통의 ‘역전승’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투표 결과 가운데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대만 국민들이 차이 총통의 반중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19일 롄허보 등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타오위안(桃園)의 조초(藻礁·산호의 한 종류)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 이전 △국민투표일을 대선일과 연계 등 4가지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는 대만 야당인 국민당이 추진한 것이다. 4개 안건 모두 집권 민진당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내용이어서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안건에 따라 투표율은 41.08¤41.09%를 기록했다. 4가지 안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안건은 가축 성장 촉진제인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와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두 가지였다.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은 반대 413만1000여 표(50.7%)로 찬성 393만6000여 표(48.3%) 보다 20만 표 가까이 앞섰다.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는 반대 426만 2000여 표(52.3%), 찬성 380만4000여 표(46.7%)로 4개 안건 중 반대 비율이 가장 높았다.

국민투표 전 대만 TVBS 방송이 성인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에 응답자의 55%가 찬성, 33%가 반대했다. 다른 항목들에 대해서도 찬성 비율이 높아 이번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차이잉원의 역전승’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건은 단순히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넘어 미국과 경제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을 의미했다. 차이 총통은 국민투표 전 유세에서 “이 사안은 ‘식품 안전 문제’가 아니라 대만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경제·통상 문제’”라고 호소했다. 롄허보 등 대만 언론들은 대만 내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 정부가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결정한 것은 중국의 군사적 압력 속에서 안보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미국과 전방위 관계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차이잉원 정부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포함된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대만의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 금지가 FTA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해 왔다. 차이잉원 정부가 수입을 허용한 직후 미국과 대만은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재개했다.

차이잉원 정부의 탈원전 정책 무력화를 겨냥한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안건도 부결되면서 대만의 탈월전 정책도 변함없이 유지되게 됐다. 대만 4원전은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여파로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돼 봉인된 상태다. 대만에는 1¤4원전이 있는데 이 중 제4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들은 노후 돼 이미 가동을 중단했거나 곧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정부·여당이 완승함에 따라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여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이잉원 총통은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발표한 담화에서 “국민투표는 누가 지고이기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미래를 어떻게 걸어가느냐의 문제”라며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 인민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야당인 국민당은 선관위의 공식 결과 발표 전에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은 18일 밤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당내에서 ‘전범(戰犯)’을 찾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중국은 국민투표 결과를 강하게 비난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19일 사설에서 “민진당은 최근 몇 달 동안 중요한 문제를 외면한 채 대규모 정치 동원으로 대만을 혼란에 빠트렸다”면서 “민진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대만 주민의 이익을 배신했다는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진당은 집권 전에는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을 반대하더니 집권 후 강력한 옹호자가 됐다”며 “이는 국민의 건강을 희생해 미국에 줄을 서는 것이며, 외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다 내 주겠다는 뜻”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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