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하려면 당국 심사-충성맹세
제도 개편 뒤 첫 선거 ‘中 뜻대로’
중도성향 11명, 큰 표차로 패해
“낮은 투표율, 체제 불신임” 지적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전체 의석 90석 가운데 89석이 친중파로 채워졌다. 친중파가 아닌 후보 가운데 당선된 1명도 반중파가 아닌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반중국 성향 후보들은 대부분 출마 기회를 박탈당했다. 반중파 의원이 단 한 명도 뽑히지 않은 것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밍보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19일 실시된 입법회 선거에서 △시민들이 직접 뽑는 10개 지역구 의원 20명 △각 업계의 간접선거로 뽑는 직능대표 의원 30명 △선거인단이 뽑는 의원 40명 등 총 90명 가운데 89명이 친중파 의원으로 채워졌다. 나머지 1명은 중도 성향의 틱치연(狄志遠·64) 당선자다. 그는 직능대표 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며 이번 입법회에서 유일한 비(非)친중파 의원이 됐다. 틱 당선자는 밍보에 “1 대 89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입법회에서 최선을 다해 내가 지지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했다. 지역구 출마 후보 가운데 11명은 중도 성향이었지만 이들은 친중파에 밀려 모두 패했다.
중국은 24년 전 반환 당시 국제사회에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통해 홍콩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항인치항 대신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 원칙을 내세웠다. 홍콩인을 뜻하는 ‘항인’ 대신 ‘애국자’를 써서 홍콩이 중국의 통제권 아래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중국이 3월 애국자치항 원칙을 내세워 홍콩 선거제를 개편한 이후 처음 치러졌다. 지역구 후보는 홍콩 당국의 자격심사를 거치고 당국에 충성 맹세도 해야 했다.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해 범민주 진영에서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유권자의 관심은 싸늘하게 식었고 투표율은 30.2%로 역대 최저치였다. 케네스 찬 홍콩침례대 부교수는 밍보에 “낮은 투표율은 체제에 대한 불신임”이라고 지적했다.
친중파 성향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친중파가 다수 뽑힌 점을 부각시키면서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135만 명의 유권자가 몰린 점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홍콩의 민주화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선거”라고 평가했다. 중국 당국은 이날 ‘애국자치항 원칙으로 홍콩 정세가 안정됐고 민주주의 또한 발전했다’는 내용의 백서를 발간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외교장관은 20일 공동성명을 내고 “홍콩의 입법회 선거에서 불거진 민주주의 쇠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