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당국이 화이자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구용 치료용 알약을 승인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구용 알약이 미국에서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2일(현지 시간) 화이자의 알약 ‘팍스로비드’를 가정용으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허가 대상은 12세 이상의 성인과 어린이 환자로 코로나19가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해야 한다. 당뇨나 심장병 등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층이 주로 포함되며 어린이의 경우 몸무게가 최소 40kg을 넘어야 한다. 팍스로비드를 구매하기 위해선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야 하며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에 12시간 간격으로 복용을 해야 한다.
화이자에 따르면 팍스로비드는 환자의 입원과 사망 확률을 89%까지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 실험 결과 이 약을 복용한 환자 중 1% 미만이 입원했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위약을 복용한 집단에서는 6.5%가 입원을 했고 9명이 사망했다. 화이자는 이 치료제가 새 변이인 오미크론에 대해서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AP통신은 “팍스로비드의 승인은 미국 내 입원·사망자가 급증하고 오미크론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와중에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정표”라며 “이 약은 초기 코로나19 감염을 치료할 더 빠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승인됐던 코로나19 치료제는 링거용 또는 주사제 밖에 없어서 병원 입원이 필요하거나 매우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팍스로비드의 가격은 미국에서 총 30알인 1인분 한 코스 당 530달러(약 63만 원)다. FDA는 성명에서 “이번 승인은 중대한 시기에 코로나19와 싸울 새로운 수단을 제공한다”면서 “고위험군 환자들이 항바이러스 치료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이자는 당장 올해 안에 전 세계에 18만 코스를 납품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중 미국에 배정된 물량은 6만~7만 코스다. 내년도에는 생산량을 끌어올려 총 1억2000만 코스가 각국에 공급될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앞서 화이자와 총 1000만 코스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내년 1월에만 25만 코스를 미국이 공급할 것이고 각주마다 공평하게 분배해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한 지역에도 도달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은 이날 나머지 계약 물량은 늦여름은 돼야 모두 공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팍스로비드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 약은 증상 후 5일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의사 처방을 받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서 뒤늦게 복용하면 약의 효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검사소와 병원마다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AP통신은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알약 치료제 ‘몰누피라비르’도 FDA가 사용 승인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몰누피라비르는 팍스로비드에 비해 효능이 적고 부작용은 많은 게 단점이다. 머크는 당초 임상 결과 이 약의 입원·사망 예방 효과가 50%라고 밝혔지만 최종 임상 결과에서는 효과가 30%로 낮아졌다고 수정했다. 지난 달 말 FDA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면서 13대 10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승인 권고가 내려진 바 있다. 따라서 몰누피라비르가 향후 정식 승인이 되더라도 미국 내에서는 팍스로비드가 더 광범위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몰누피라비르에 대한 기존 주문을 취소하는 나라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보건당국은 22일 이 같은 우려에 따라 5만회분에 이르는 머크의 몰누피라비르 사전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를 대신 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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