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파산 직전이었다. 애플의 제품은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비싸기만 할 뿐 소비자들의 마음을 전혀 사로잡지 못 했다. 회사의 수익은 말라가기만 했고 주가는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잡스는 자존심을 접고 라이벌이자 친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에 손을 벌렸다. 잡스의 요청에 게이츠가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고 애플은 기사회생했다. 당시 잡스가 했다는 감사의 인사말이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때 애플의 굴욕을 본 사람들은 누구도 이 회사가 20여 년 만에 MS는 물론, 세상 모든 기업의 주가를 앞지르고 새 역사를 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미국 애플의 기업가치(시가총액)가 세계 최초로 3조 달러를 돌파했다.
3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애플의 주가는 올해 거래 첫날인 이날 2.5% 오른 182.01달러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82.88달러까지 오르면서 한 때 시가총액이 3조 달러 선을 살짝 넘었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짧았지만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1976년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공동 창업한 애플은 4년 뒤인 1980년 증시에 입성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회사 포드 이후 가장 큰 기업공개(IPO)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20여 년 간 주가는 이렇다할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반전의 모멘텀은 2000년대 중반에 개발, 출시한 첫 스마트폰이었다. 이후 아이폰 시리즈의 판매량에 따라 급등세와 숨고르기를 거듭한 애플의 시가총액은 창사 42년 만인 2018년 8월 1조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년 3월 잠시 1조 달러 밑으로 내려온 애플의 가치는 같은 해 8월 미국 상장기업으로는 최초로 2조 달러 벽을 넘었고 16개월 여 만인 이날 3조 달러까지 돌파했다.
애플의 기업가치는 MS(2조5100억 달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1조9300억 달러), 아마존(1조7300억 달러) 등 경쟁 빅테크 기업들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한 때 미국의 대표기업이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 시가총액의 30배에 이르고, 영국이나 인도의 한해 경제규모(국내총생산·GDP)보다도 많은 수치다.
이 같은 애플의 질주는 역설적으로 팬데믹의 수혜를 입은 부분이 크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외출이 어려워지고 비대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커졌다. 이런 영향으로 애플을 비롯한 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2020년 3월 이후 일제히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증시 랠리를 주도했다. 애플의 시가총액도 이 때부터 2년도 안되는 기간에 3배로 불어났다.
시장에서는 애플의 질주가 아이폰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영역을 확장해 온 덕분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애플이 자율주행차와 가상현실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가운데 베스트셀러 제품들을 계속 출시할 것이라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줬다”고 분석했다. CNBC방송도 “아이폰이 여전히 가장 큰 매출의 원천이지만 서비스 분야의 사업도 크게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애플은 팬데믹 기간 중 아이폰을 비롯해 맥북, 애플뮤직, 애플TV 등의 분야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애플 등 테크기업들이 팬데믹을 이용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실적을 쌓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여전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의회는 이런 지적에 대응해 반독점 조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빅테크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과 이로 인한 매출 손실 역시 애플이 새해에 극복해야 할 과제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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