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밖 방치된 임신부 유산에 中 발칵…우한사태 재현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6일 1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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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 시안의 코로나19 검사소. 뉴시스
중국 산시성 시안의 코로나19 검사소.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구 1300만 도시 전체가 봉쇄된 지 16일째인 6일 중국 시안(西安) 상황이 심상찮다. 응급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임산부가 코로나19 음성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 유산한 사건은 시안을 넘어 중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도 성난 민심을 다독이려는 듯 이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며 시안 당국을 질타했다. 2020년 1월부터 70일 넘게 1100만 명이 사는 대도시를 폐쇄한 우한(武漢)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5일 텅쉰왕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이달 1일 오후 8시경 시안에 사는 임신 8개월 된 여성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경찰 도움을 받아 가오신(高新)병원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가 4시간 뒤에야 나온다는 이유로 이 여성을 응급센터 밖에 2시간 넘도록 방치했다. 오후 10시경 그가 하혈을 하자 그제야 병원 측은 수술실로 옮겼다. 하지만 뱃속 아이는 이미 숨진 뒤였다.

이 사실은 여성의 가족이 4일 기막힌 사연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리면서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누리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역 조치인가” “병원 관계자들은 응급 상황을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가” “2년 전 우한 사태가 떠오른다” 등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이런 가운데 시안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은 일기체 형식의 글인 ‘장안십일(長安十日·장안은 시안의 옛 이름)’이라는 글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시안 봉쇄가 시작된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3일까지 상황을 기록한 이 글은 ‘제2의 우한일기’로 불리고 있다. 앞서 중국 소설가 팡팡(方方·67)은 2020년 봉쇄된 우한에서 벌어진 참상을 기록한 ‘우한일기’를 작성해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장안십일을 쓴 독립기자 장쉐(江雪)는 “눈물 흘리며 병원을 찾은 젊은 임신부에게 이 도시는 관심을 쏟아야 한다”며 “이 도시에 ‘일시 멈춤’ 버튼을 누른 사람, 손에 권력을 쥔 사람이 과연 도시에 사는 1300만 명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봤을까”라고 꼬집었다. 또 “이 엉터리 도시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죽지 않으면 사망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안 상황이 심상찮게 전개되자 중국 관영매체까지 진화에 나섰다. 6일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시안 임신부 사건’을 다루면서 “시안 당국은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상황을 핑계로 환자 치료를 미루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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