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중 가장 적게 받으면서도 밤늦도록 일하고 궂은일도 도맡았는데… 회사에 배신감이 듭니다.”
9일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5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최근 그만뒀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회사가 나보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더 높은 임금에 고용했다. 충격을 받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적었다. 최근 이 사이트에는 직장이나 상사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반(反)노동(Antiwork)’이라는 이름의 별도 온라인 카페까지 생길 정도다. 사직서나 상사에게 퇴사 사실을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인증샷’처럼 찍어 올리는 행위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코로나로 전통적 고용 환상 깨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반노동’ 카페 가입자는 2020년 10월 18만 명에 불과했지만 이달 가입자 수가 160만 명을 넘어섰다. 1년 2개월 사이 9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반노동’ 열풍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당 카페 이용자들은 가급적 일을 적게 한다는 의미에서 서로를 ‘게으름뱅이(Idler)’라고 부른다. 이들 중 실제 무직인 회원도 3만9400여 명에 이른다. 카페 관리자는 FT에 “퇴사자들은 소규모 사업체를 차리거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전했다.
게시글에는 직장을 향한 분노가 생생히 담겨 있다. 한 이용자는 “상사가 ‘(당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알겠지만 우리는 할 일이 있다’며 내게 소리를 질러 일을 관뒀다”고 썼다. 또 다른 이용자가 상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쓰레기 같은 일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줘 고맙다. 무식한 사람들이 있는 해로운 직장에 내일부터 나가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4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자발적 퇴직자 수가 사상 최고치인 약 452만 명을 기록했다. FT는 “코로나 기간 동안 전통적 고용 구조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퇴사자가 늘어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코로나19 지원 정책으로 근로자들의 생계 유지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의 재난지원금, 실업수당 확대 등으로 117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가계 총 저축액이 2조7000억 달러(약 3240조 원) 증가했다”고 전했다.
○ 노동참여율 저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
미국 내 구인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노동’ 운동의 확산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더 많은 청년들이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면 침체된 노동참여율 추세에 장기적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노동참여율은 61.8%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 1월(63.4%)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며 “‘반노동’과 유사한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어 한국에서도 전통적 고용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구직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내 수백만 명의 저소득 근로자들은 오미크론 변이의 급속한 확산에도 유급 병가를 보장받지 못해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처지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구인난으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기업들이 유급휴가제를 철회하거나 줄이고 있다는 것. 이에 따르면 하버드대가 지난해 가을 저임금 근로자 66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5%는 “몸에 이상을 느껴도 출근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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