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가격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연방정부가 민간기업이 제품과 서비스에 매기는 가격의 상한선을 폭넓게 적용하던 관행은 1970년대 이후 사라졌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몇 년 동안 임금과 물가를 동결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고 이후로 “가격 통제”라는 단어는 생산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관료주의를 떠올리는 단어가 됐다. 이후 수십년 동안 가격 통제를 연구한 경제학자는 거의 없었다.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좌파 경제학자들이 가격 통제 정책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도 닉슨시대의 정책을 부활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수가 당시의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촉발한 논쟁에 좌파, 우파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나섰다. 일부에선 그런 생각을 재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실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까지 워싱턴의 정책 담당자들은 최소한 수준으로도 가격상한제를 받아 들일 생각이 없다.
가격 통제에 대한 몇가지 궁금점을 풀어보자.
▲경제학자들은 왜 가격 통제를 싫어하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다. 상품 가격이 높으면 사람들이 사질 않으며 낮으면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해 생산을 줄인다. 자유시장에서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면서 매겨진다.
이 모델에 따르면 정부가 인공적으로 가격 상한선을 둘 경우 공급이 줄고 수요는 늘어서 물품 부족현상을 촉발한다.
그렇지만 이건 이론일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생산자들 사이의 불완전 경쟁, 소비자 행동의 불규칙성, 가격 기제가 수요공급 균형을 반영하는 속도의 차이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가격이 항상 기본 모델 예측에 맞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 기본적 이론의 논리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인공적으로 가격을 낮추면 물품 부족과 비효율성, 암시장의 활성화 등 의도치 않은 결과 등이 발생한다. 일부 학자들은 특정 제품에 대한 가격통제가 특정 상황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바가지를 씌우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억제하는데는 가격통제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최근 시카고 부스경영대학원에서 41명의 경제학자들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1%가 1970년대 방식의 가격통제로는 “향후 12개월 동안 미국의 물가상승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학자들은 단기적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겠지만 물품 부족 등 다른 문제를 촉발할 것이라고 답했다.
▲예전에 가격 통제가 효과가 있었나: 1971년 8월 소비자 물가가 한국전쟁 이래 가장 빠르게 상승하자 닉슨 대통령이 90일 동안 임금과 가격, 월세를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90일 뒤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수 있었지만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대통령 경제고문이 주도하는 위원회가 정한 상한선이 적용됐다.
처음엔 가격통제가 잘 작동하는 듯했다. 1970년 6%에 달한 인플레이션이 1972년 3%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를 푼 직후 물가가 수직 상승했고 닉슨 대통령이 다시 동결조치를 취했다. 이번에는 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중동석유파동이 일부 이유였다. 1974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직후 가격통제가 해제됐다.
2차 세계대전중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도 엄격한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전시 기본 생필품과 식품 부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규제의 필요성에 대부분 찬성했다. 사실 전시에 가격통제를 한 사례는 역사상 무수히 많다. 경우에 따라 배급과 임금억제가 동반되기도 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가격 통제 논의를 시작한 이유는: 닉슨 시대의 가격통제 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경제학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그러나 일부는 당시의 실패를 근거로 모든 제품의 가격 상한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는 중동석유파동과 금본위제 폐지 등 경제 혼란이 심했던 때여서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닉슨시대 가격 상한은 모든 상품에 대한 것이지만 현재 제기되는 주장은 일부 상품에만 적용하자는 것이다.
많은 진보 경제학자들이 최근 몇년새 현실세계 시장이 기본 경제모델 예측에 맞게 작동하지 않는 일이 많다면서 한때 멸시되던 최저임금 인상론을 펴고 있다. 가격 통제 도입 주장도 이 주장과 맥락이 같다.
이사벨라 웨버 매서추세츠 앰허스트 대학 경제학자는 2차세계대전 직후를 예로 들었다. 정부가 가격 통제를 풀자마자 물가가 치솟았다는 것이다.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에서 웨버박사는 당시 저명 경제학자들 제안에 따라 통제를 서서히 풀었다면 인플레가 낮았을 것이라며 전쟁시기의 대혼란이 오늘날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에는 두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전시가격 통제는 일반적으로 배급과 함께 이뤄지는데 배급없이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자들이 제품을 공급하지 않아 물품 부족이 빚어질 것이라고 인디애너대학교 화폐사학자 레베카 스팽이 주장했다.
가격을 강제로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이 동의해야 하고 각종 기관은 물론 정부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정치에서 특정 생각에 폭넓은 합의를 이루는 일은 드물다.
▲올해 가격통제 정책을 취한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아직 구체적으로 가격통제 방식을 제안한 사람이 없다. 다만 팬데믹으로 공급망 혼선이 빚어진 분야에 적용할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공급망 혼선을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이들의 논점이다. 육류, 컴퓨터칩, 휘발유 등의 부족한 제품이 생겨도 시장의 힘에 의해 빠르게 생산이 늘어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들은 부족현상이 있는 제품 가격을 올려 큰 이익을 보게 되고 돈많은 사람들만 값이 오른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이고 특정 제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격 상한선을 둠으로써 정부가 가난한 사람도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 지지자들은 기업들이 정한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하는 이점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물가상승에 맞춰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오늘날 거의 없다. 가격통제에 반대하는 사람들로선 이 점이 문제다. 임금 상승을 억제하지 않으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업들이 해고하거나 생산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바드 대학교 로렌스 슈머스 교수는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기전이 없으면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 줄만 길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통제를 지지하는 유력 정치인은: 현재로선 가격통제를 지지하는 주요 정치인은 없다. 정부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 백악관 당국자가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대기업이 협상을 통해 코로나 검사기 등 일부 제품에 대한 가격 통제가 일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민주당은 갈수록 과도한 기업이익이 최근 물가상승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상원 금융위원회 셰로드 브라운 의장은 “미국 최대 기업의 이익이 3조달러(약 3565조원)에 달한다”면서 “거대 기업들이 이익을 줄이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높은 가격을 부담시킨다”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실제 가격 통제를 제안하지는 않고 있으며 대신 경쟁을 강화하고 물가를 낮추기 위한 합의와 정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움직임은 사실 현재의 가격 통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안과 동일한 것들이다.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 인상과 같이 두루뭉실한 정책으로 수요를 줄이고 경제를 냉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수술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연준의 조치는 노동시장 회복을 늦추고 투자를 약화시키며 물가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히 고통받을 때까지 물가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등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가격 통제론자들이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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