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위기 속 외무장관 담판까지 지었지만, 결국 이견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잠시의 유예 기간을 벌었다는 평가와 함께 최악의 경우 러시아의 ‘침공 각본’에 이목이 쏠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미·러 외무장관 담판 전날인 20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러시아가 각본상 다양한 도구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안다”라며 전면적인 군사 행동, 체제 불안정 행동, 하이브리드 공격, 준군사 전술 등을 거론했다.
◆우크라 인근 러 병력 최대 17만5000명…돈바스 지역 주목
전면 군사 행동은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무력 침공을 시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 러시아 병력 규모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12만7000명이 침공 준비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보 당국 기밀문서를 인용, 17만5000명 규모의 다발 공세 가능성을 보도하기도 했다. 또 폴란드 국방 연구 단체 로챈컨설팅 콘라트 무지카 대표를 인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근에 24개 전술 대대를 보유했고, 추후 64개로 늘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장에서의 병력 이동 규모를 고려하면 가장 명백한 시나리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전체 국가 점령”보다는 도네츠크, 루간스크 등 분쟁 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방식에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으로 묶이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인근에만 분리주의 병력을 합쳐 총 3만 명 규모의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탱크와 장갑차, 기갑 부대, 포병 부대 등이 이 지역 인근에 배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격 전쟁 필요 없어”…사이버 포함 ‘하이브리드 전투’ 거론
사이버전을 비롯한 ‘하이브리드전’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폭스뉴스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고립하고 불안정하게 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격 전쟁(a hot war)’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며 러시아가 이미 사이버 공격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도발을 날조하고 무력간섭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지난 2014년에도 유사한 활동을 했다는 게 백악관의 평가다.
폭스뉴스는 러시아가 몇 달에 걸쳐 “추적할 수 없는 사이버 공격”을 동반한 하이브리드 전쟁을 행할 수 있다며 “탱크가 국경을 넘으면 누가 침략자인지가 명확하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전투에서 침략자는 명백한 지문을 남기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개발 당국은 이와 관련, 지난 16일 러시아가 자국 정부 웹사이트에 사이버 공격을 행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는 계속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과 정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전력을 증강 중”이라고 했다.
◆“러시아, ‘그레이존’ 준군사 전술 동원 역사”…바이든 직접 경고도
준군사 전술도 거론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를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인프라 태스크포스(TF) 관련 회의 자리에서 “러시아는 공공연한 군사 행동과 다른 준군사 전술, 이른바 그레이존 공격이라는 조치를 사용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레이존 공격’을 “러시아 군복을 입지 않은 러시아 병사의 행동”으로 묘사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내 분리주의 반군 등 무장 세력 활동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백악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소위 ‘위장 작전(false-flag operation)’을 수행할 공작원 무리를 배치했음을 시사하는 정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위장, 친러 ‘대리 전력’을 상대로 사보타주를 행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블링컨 장관 역시 20일 베를린 연설에서 “러시아가 도발·사건을 부추기고, 세계가 계략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기를 기대하며 이를 군사 개입 정당화에 이용하려 한대도 아무도 놀라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었다. 백악관의 경고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우크라 전력, 러에 현저히 밀려…러 세계 2위 vs 우크라 22위
최악의 상황으로 실제 무력 전쟁이 벌어질 경우 우크라이나로서는 현저히 불리한 싸움이 될 수 있다.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러시아는 2위, 우크라이나는 22위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러시아는 전투 시 가용 가능 인력이 6973만 명에 달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2231만 명으로 그 절반도 안 됐다. 현역병 규모는 러시아가 85만 명, 우크라이나가 20만 명 수준으로 역시 차이가 컸다.
물자 면에서도 전투기·요격기와 헬리콥터, 수송기 등을 포함한 항공 전력 역시 러시아는 4173대에 달했지만 우크라이나는 318대에 불과했다. 탱크 수는 러시아가 1만2420대였지만, 우크라이나는 2596대 수준이었고, 장갑차는 러시아가 3만122대, 우크라이나가 1만2303대였다.
이에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실제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 될 경우 미국과 나토 등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침공 시 러시아가) 진지하고 소중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상황이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은행의 달러 사용을 거론, 금융 제재도 시사했다. 블링컨 장관 역시 21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담판에서 직접 “단합되고, 신속하고, 가혹한 대응”을 경고했다.
◆대응 수위 두고 이견 있는 듯…바이든 발언에 우크라 반발
그러나 실제 대응 수위를 두고는 이견의 조짐이 보인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 자신도 1주년 회견에서 러시아의 행위가 “사소한 습격(minor incursion)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지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당장 우려와 반발을 불러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사소한 습격’과 ‘작은 국가’는 없다”라고 일침을 놨고, 푸틴 대통령에게 사실상 우크라이나 진입을 허가하느냐는 지적도 나왔었다.
그러나 CNN은 21일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일부는 진실”이라고 평가한 한 나토 당국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아울러 한 EU 당국자 역시 “그(바이든)가 꽤 진실했다고 본다”라며 “그게 정치적으로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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