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동영상이 화제입니다. 유튜브나 CNN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어 원(Year One)’ 제목의 동영상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위원회가 제작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중환자실 간호사 등 일반 국민들이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의 업적을 알리고 “대통령을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영상을 제작한 것은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정치 전문매체 엑시오스에 따르면 지지율을 올려볼 목적으로 에미상 수상 경력의 전문 제작진을 고용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비디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홍보 동영상에서 정작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더 부각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진행자 겸 나레이터 역할을 배우 톰 행크스(62)입니다. 미 언론 기사들도 행크스 출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해진 공식대로 흘러가는 업적 홍보 동영상에서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할리우드 A급 스타 행크스이기 때문입니다. 4분 30분초짜리 동영상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4분 10초 쯤 너무 늦게 출연해 “나오는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동영상 초반부터 나오는 행크스는 “우리는 강하다, 용기 있다, 쓰러지지 않는다, 용감한 국민들의 나라 미국이다”라고 힘줘 말합니다.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가진 행크스가 양복도 아닌 캐주얼 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미래를 낙관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해 “신뢰가 간다”는 호평 일색입니다. “바이든보다 더 대통령답다” “이참에 당신이 대선에 나가라”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행크스에게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그만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국민배우도 드뭅니다. 친(親) 민주당 연예인으로 유명한 그는 이전 대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고 정치자금을 기부했습니다. 대선 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중요한 이슈들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사회 문제에도 눈을 돌릴 줄 압니다.
행크스는 자신이 믿는 이슈라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할리우드 A급 스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높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배경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돼서 고(故) 로버트 돌 상원의원 등 공화당 정치인들이 주축이 됐던 ‘숨겨진 영웅(Hidden Heroes)’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워싱턴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비를 세우고, 한국전 베트남전 2차 세계대전 등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위한 복지기금을 모으는 이 캠페인을 위해 행크스는 보수 운동가들과 나란히 의회 증언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행크스는 권력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당부하며 백악관 기자단에게 선물을 건넨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04년 백악관을 구경 갔을 때 기자단이 미국의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모두 갖추고 있는 커피머신도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커피머신을 선물했습니다. 2010년, 2017년에도 선물했습니다. 선물한 커피머신의 종류도 아메리카노만 만들 수 있는 기계에서 에스프레소 기능을 갖춘 모델로 진화했습니다. 2017년 선물 때는 기자들이 행크스가 동봉한 메모를 보고 “감동했다”며 속속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진실, 정의, 미국의 정신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 달라. 특히 ‘진실 부분’을 위해”라는 메모였습니다.
“런, 포레스트, 런(run, Forrest, run)”은 공식 연설 무대에 오르는 행크스에게 청중들이 외치는 단골 구호입니다. 2018년 행크스가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우리 모두 선거합시다(We All Vote)’ 행사에 연사로 나섰을 때도 관중의 열띤 함성 때문에 제대로 연설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구호는 행크스의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1994년)에서 어린 시절 약한 다리 때문에 지지대에 의존해야 했던 검프가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달릴 때 친구가 응원하는 대사입니다. 빠른 주력 때문에 대학 미식축구팀에 들어간 검프가 공을 들고 달릴 때도 이 대사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달려라”는 의미지만 연설 무대의 행크스에게 보내는 “런”은 “출마하라”는 뜻이겠죠. 바이든 홍보 동영상 댓글 중에도 행크스를 응원하는 이 구호가 등장합니다.
미국인들이 원하는 할리우드 스타 출마자 명단에 행크스의 이름은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피플즈세이가 전국 성인 3만 138명을 대상으로 ‘대선에 출마했으면 하는 연예인은 누구인가’를 조사한 결과 행크스(20%)는 안젤리나 졸리(30%), 오프라 윈프리(27%)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남성 연예인 중에는 1위였습니다. 남성 중에서 윌 스미스, 조지 클루니,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화씨 9/11’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행크스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무어 감독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행크스처럼 널리 사랑받는 인물이 출마한다면 찍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에게 ‘내가 부통령 후보가 돼서 잡일은 다 해줄 테니 당신은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두 번이나 권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행크스가 사양했다고 하죠.
만약 행크스가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정치적 행동력, 유머감각, 여배우 리타 윌슨과 40년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점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 행크스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자녀 문제입니다. 둘째 아들 체스터는 약물중독, 인종차별 발언, 음주운전 등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을 벌여 2020년 영화 촬영차 호주에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는 행크스 부부의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행크스의 아들 문제에 대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사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댓글 0